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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거 Sep 30. 2024

상담하는 아빠는 육아휴직 중 - 28

숲이 119일 '시작합니다'

 2020~2021년 청약광풍이 불던 시절 한 오픈채팅방에 초대되었고, 나는 일찍이 청약에 당첨되었지만 아직도 그 방에 머물고 있다. 청약에  관계없이 그 방에서 이루어지는 대화들이나 정보들이 나에게 꾀나 유익하고 즐겁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어느 집단이든 그룹이 형성되고, 대체로 주도권(?)을 잡은 특정그룹이 그 집단안에서 가장 큰 목소리를 낸다.

 이 오픈채팅방 역시 그랬다. 나는 조금 늦게 초대되었고 이미 그 방은 특정그룹이 형성되어 있었다. 그분들의 대화를 듣고 있으면 각각의 개성과 삶은 있으시지만 공통적인 것은 '나와는 다른 삶'을 살고 계신 분들이었다. 

 사람은 자연스럽게 자신과 비슷한 사람들과 어울리게 된다. 어렸을 적에는 그 '비슷함'이 놀이 등 재미의 영역에 대한 비중이 높다면, 나이가 먹을수록 직업, 자산 등등 현실(?)적인 영역에 대한 비중이 커져가는 것 같다. 나이가 들수록 대학전공이 무엇인지, 내가 하는 일이 무엇인지 등등에 따라 자연스럽게 그룹이 나누어지기 때문이지 않을까라는 생각이다. 이런 의미에서 저 오픈채팅방에서 나와 다른 영역에서 다른 삶을 살고 계신 분들의 이야기를 경험하는 것은 나에게는 꾀나 큰 재미이고 어디서든 쉽게 얻지 못할 굉장히 감사한 정보들이다. 그저 '청약에 관심이 있다'외에는 나와 전혀 공통점이 없는 분들인데, '청약에 관심 있었다'란 아주 과거의 이유로 나는 감사하게도 그분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고, 가끔 내 생각을 그분들께 들려드리고 있다.

 청약열풍이 사그라들면서 위 오픈채팅방의 이름이 '육아공동체'로 바뀌었다. 주로 이야기를 나누시는 분들이 비슷한 또래에 자녀를 키우고 계셨기에 아주 자연스럽게 육아 관련 이야기들도 함께 오고 갔기 때문이다. 나는 숲이가 생기기 전부터 육아관련해서도 이곳에서 많은 정보들을 얻었고, 지금 역시 육아관련해서 궁금한 것이 있으면 이곳에 자주 질문을 한다.

 '시작합니다'는 이 오픈채팅방에서 자녀를 키우는 부모들이 자녀가 잠에 든 후 이제 자신들만의 시간을 보낸다고 알리는 신호였다. 간단한 먹거리와 함께 자신들의 자유를 알리는 용어(?)라고 볼 수 있겠다. 그냥 저 단어를 볼 때 가끔 '나도 저런 날이 오겠지?'라는 생각을 하곤 했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많은 퀘스트들을 해결해야 했다. 아이를 낳을 수 있는 조건을 완료해야 했으며, 아이가 우리에게 찾아와야 했고, 찾아온 아이를 잘 지켜야 했으며, 잘 지켜서 태어나준 아이가 밤잠을 잘 때까지 키워야 했다. 그런데 이제 드디어 그날이 온 것 같다. 숲이는 70일 정도부터 밤에 다섯 시간 이상 통잠을 잤으나 그 시간이 규칙적이진 않았다. 그런데 백일 이후부터 조금씩 패턴이 잡히더니, 이제는 저녁 7시~7시 30분 사이에 일정하게 잠에 든다(새벽에 한 번 정도 깰 때도 있고, 아침 6시까지 쭉 잘 때도 있다). 심지어  얼마 전 '잠과의 전쟁'이후부터는 숲이가 밤잠은 혼자 누워서 잠들기에 무엇인가 우리 부부에게 진정한 저녁시간이 생긴 느낌이다. 그 시간이 되면 cctv로 숲이를 보면서 와이프와 둘이 함께 식사를 하기도 하고, 잠든 아이 옆에 나란히 누워서 함께 예능을 보기도 한다. 와이프는 출산 후 깨진 몸의 밸런스를 위해 홈트를 하기도 하고, 나는 여유 있게 글을 쓰기도 한다. 물론 아직 '시작합니다'란 글을 그 오픈채팅방에 올린 적은 없고, 아직까지 올릴 생각은 없다. 또 숲이가 어떤 변수를 줄지 모르니.

 숲이가 정말 건강하게 자라고 있음에 다시 한번 감사하고, 숲이의 의사표현이 강해져 우리가 에너지를 쏟는 양이 커지는 만큼 우리가 휴식할 수 있는 시간도 늘어간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리고 앞으로도 이 비율이 점차 커질 것이고 이는 다시 말하면 시간이 지날수록 숲이와 함께하는 시간이 줄어드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힘들기는 하지만 즐겁고 행복함으로만 채우기에도 모자라는 시간임을 되새기며 내일도 숲이와 즐거운 시간을 보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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