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설적인 표현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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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학창 시절 굉장히 말랐고 소극적이었다. 그러다 보니 괴롭힘을 종종 당하기도 했고(중학교 때부터 키가 크면서는 없었다 다행히도) 소극적인 성격 탓에 표현을 잘하지 못했다. 아직까지도 제일 힘든 표현 중에 하나가 상대방이 듣기 싫어하는 말을 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지금이야 내 생각을 주도적으로 얘기하고 줏대 있는 표현을 자유롭게 하는 편이지만, 이렇게 되는 과정이 그렇게 쉽지는 않았다. 이 과정에서 아마 가장 큰 도움을 준 존재는 부모님도 주변 친구도 아닌 아마 힙합 노래였던 것 같다. 다소 오그라드는 표현일 수 있지만 실제로 그러했다ㅎㅎ..
자극적인 표현과 FuckFuck거리는 가사가 자신의 내재된 생각을 가감 없이 드러내는 것 같아 멋있게 보였다. 나는 그렇게 잘 못했으니. 나와 반대되는 모습에 희열을, 또 한편으로는 위로를 받았던 것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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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 때 자주 들었던 힙합 노래는 국내 언더그라운드, 혹은 외국의 유명한 래퍼들의 노래였다. 그 당시 한국힙합은 그렇게 다양하지 않았고, 대체로 동일한 가사와 분위기, 사회 비판의 다소 오그라드는 노래를 뱉어댔다. 그래서 마음에 드는 노래들이 그렇게 많지는 않았다.
20대 때부터는 쇼미더머니의 흥행과 함께 많은 힙합노래가 대중화되기 시작했다. 나에게 있어서는 다양한 선택지가 생겨 좋았다. 20대 초 중반에는 다소 화려한 랩스킬과 신선한 가사들을 위주로 들었던 것 같다. 또 무던한 사랑노래들도 내 플레이리스트에 많았다.
20대 후반이 되니 아무래도 가슴에 여운을 주는 노래들이 플레이리스트에 오래 남게 되었다. 20대 후반쯤 되니 새로운 게 없었고 새로운 자극이 없었다. 안 해본 게 없었고 거의 다 해봤다. 그리고 하루하루 출근하는 것만 해도 많이 버겁기도 했다. 그렇게 무기력 + 노잼의 시기를 겪었을 때도 나는 계속 힙합 노래를 들어왔다. 최근에 가장 즐겨 듣고 와닿는 가사를 담은 노래가 있다. 뱃사공의 ”Rainbow “라는 노래다. 아래의 가사가 너무 좋았다.
내일은 다른 희망을 걸고 살지 다
그것마저 없음 진짜 좆 되니까
Life's 뭐라서 존나 못됐지만
쟤보다 더 못돼야 똑똑하지
누구 하나 안 힘든 사람 어딨어, yeah
기댈 사람 없음 찾아 Jesus
각자의 방식으로 기도, yeah
후엔 그를 원망하기도, yeah
다 쫓기든 어디로든지 가네
여기가 아니라면 그게 어디든지 간에
Haven 아니 뭐 그런 데는 없어도
날 편히 재울만한 작고 조용한 틈새를
Yeah, 말 하면 입만 아퍼
널 위로하라 함 거짓말 할겨
힘내 시발놈아, 이건 빈말 아녀
그저 가다 보면 언젠간
희미하게 보여 rainbow
It's the rainbow
자극적인 육두문자 없이도(사실 몇개 있음ㅎ) 평범한 직장인의 마음을 너무 잘 후벼파는 가사가 아닐까. 뭔가 목표 없이 살아가는 직장인이 되어버린 요즘, “다 쫓기든 어디로든지 가네. 여기가 아니라면 그게 어디든지 간에”라는 표현이 지금의 내 모습을 대변해 주는 것 같았다. 내일은 각자 다른 희망을 걸고 살아가고 그러다 보면 희미하게 보이는 삶의 목표에 한 발자국 더 가까이 갈 수 있지 않을까.
40대 50대... 할아버지가 되어도 난 이러한 자극적인 힙합노래를 듣고 있을까?ㅋㅋ 아마도 그럴 것 같다. 힙합이 없는 내 노래 플레이리스트는 상상하기 힘들다. 근데 궁금하다. 같은 노래가사라도 나이가 든 나에게는 어떻게 와닿을지.. 앞으로도 힙합 노래를 통해서 다양한 영감과 위로를 받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놀랍게도 이러한 오그라드는 소리를 가장 이성적인 시간대인 오후 2시에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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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개인적인 잡설이 길어졌다. 무튼 나는 힙합의 직접적인 표현이 너무 좋다. 그게 내가 쉽사리 하지 못하는 표현들을 표출하는 또 다른 표현의 방식이라 생각한다. 그래서인지 힙합만이 아닌 다른 장르의 음악, 춤, 그림 등등의 모든 예술이 표현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자신의 숨겨진 감정과 생각을 다른 방식으로 표현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너무 멋지지 않은가. 입에서 나오는 말과 언어만이 아닌 다른 방식의 표현법이 이렇게 다양하다는 게.
힙합에 대한 얘기를 쓰다 보니 결국 가장 많이 등장하는 단어는 “표현”인 것 같다. 얘기가 왜 이렇게 산으로 흘렀는지 모르겠지만, 결국 나는 “표현”이라는 힙합의 성격 때문에 힙합을 좋아하게 되었다.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 표현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좋아하는 걸 티 내지 않으면 상대방이 날 좋아하는지 알 수 없는 것처럼. 사랑한다는 표현을 서로 많이 하지 않으면 사랑을 느끼기 힘든 것처럼. 거절의 의사를 확실하게 표현하지 않으면 내가 싫어하는 것을 좋아한다고 오해할 수 있는 것처럼.
앞으로 내 글 리스트에 힙합에 대한 다양한 생각, 지식, 감성을 적어보고 싶다. 이 글을 읽는 사람이 위로와 용기를 받을 수 있는 다양한 음악도 추천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