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전한 10퍼센트의 진심으로

by 플랫화잍

"너의 10퍼센트는 따로 남겨두어라."

누군가를 아무리 깊이 사랑하더라도, 혹은 깊이 사랑받는다고 믿더라도 절대 네 전부를 내주어서는 안 된다. 항상 10퍼센트는 남겨두어라. 네 자신이 언제든 기댈 곳이 있도록.


<H 마트에서 울다> 미셀 자우너, 문학동네 p.35



오늘도 딸은 밥을 남긴다. 3.9킬로의 육중한 무게로 태어났다는 사실이 무색할 만큼 가늘고 길쭉하게 자라는 중이다. 아이는 연년생 오빠를 둔, 삼 남매 중 막내로 몰래(그야말로 살금살금) 나에게 찾아왔다. 셋째라 ‘엄마도 엄마가 처음이어서’라는 어설픈 변명으로 연명하지 않아도 되었고. 애 키우는 것으로 유난이라는 애정을 가장한 간섭에도 꿋꿋할 수 있었다.


애당초 선택이라 생각할 여지도 주지 않고 결혼제도로 걸어가게끔 만들어버린 사회가 원망스러웠다. ‘엄마’란 내게 맞지 않는 옷이었다. 뿌려주는 사랑만큼 거두길 바랐기 때문인지도. 아니, 어쩌면 내가 처한 ‘엄마’라는 상황에 대한 답을 책과 글 안에서 찾으려 했던 건 아니었을까. 그 안에서는 누군가의 육아 성공담이 마치 플로우 차트처럼 눈앞에 펼쳐지곤 했으니 말이다. A를 투입하면 B가 산출되는 방식으로.


엄마는 딸을 셋 씩이나 낳은, 아들을 낳으려다 실패한 여인으로 평생을 살았는데, 나는 딸을 갖고 싶어 셋을 낳은, 그러니 성공했다는 평을 들었다. 어디까지나 우연의 산물일 뿐인데도 성공이니, 실패니, 목매달이니 애국자니 하는 말을 들을 때면 한국은 진심 성과주의에 미쳐가는 중이라는 자조 섞인 한숨만 나왔다.


벗어나려 발버둥 쳤는데도 나는 다시 세 번째로 엄마가 되었다. 그리고 계절처럼 다가오는 좌절과 맞닥뜨리며 내 마음대로 사랑을, 사람을, 세상을 통제할 수 없음을 받아들인다. 세상과의 타협일 수도. 세 번 엄마 되기란 ‘10퍼센트’를 요구하는 일이다. 바로 위 형제들에게 기운을 빨리는 하루를 보내다가도 10퍼센트를 아껴 아이의 긴 머리를 감겨주고, 온몸으로 안아주어야 했으니까. 무엇보다 이 아이를 안는다는 건 실패로 내몰리던 내 엄마의 삶을, 패배했다고 느꼈던 내 젊음을 껴안는 일이라서.


오늘도 10퍼센트를 덜어 내 몫의 마음을 남긴다. 그리고 온전한 10퍼센트의 진심으로 나를, 그런 나를 바라보는 널 사랑하게 된다.

keyword
플랫화잍 에세이 분야 크리에이터 직업 에세이스트 프로필
팔로워 8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