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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플랫화잍 Sep 18. 2022

죽음 직전에 삶이 있다.

‘직전의 삶’을 대하는 자세.

시간이 없다는 내 대답은 마음의 다른 골목을 가리킨다. 시간 부족이라는 팻말을 걸어둔 채 내가 외치고 있는 건 노동 시간에 담보로 잡힌 신체의 안녕이 아니라, 바로 내가 시간 자체로부터 소외되어 있다는 감정이다.(p.203-204)


<우리는 책의 파도에 몸을 맡긴 채>, 김영건, 어크로스

ㅡㅡㅡ


드니 빌뇌브 감독의 영화 <컨택트>에서 주인공 루이스가 외계 생명체 헵타포드의 ‘원형’ 언어를 해독하는 장면을 좋아한다. 지구인의 문장은 과거, 현재, 미래를 하나씩 반영하는 반면, 헵타포드의 언어는 과거, 현재, 미래를 한꺼번에 담아낸다.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가 인식체계를 결정한다는 아이디어를 표현한 것인데, 지구인의  ‘선형’적 시간 인식과 달리 헵타포드는 ‘순환(circle)’의 개념으로 시간을 인식하며, 이에 그들은 인간과 달리 과거-현재-미래를 동시에 볼 수 있다.


헵타포드의 언어를 연구하는 언어학자 루이스는 그들의 언어를 익히면서부터 시간의 ‘선형성’을 탈피, 미래의 환영을 본다. 이는 언어가 사람들의 사고 작용에 결정적으로 작용한다는 영화의 주제다. 아직은 서로 호감을 갖는 단계에 불과한 이안과 결혼했다가 이혼을 하고,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딸은 일찍 세상을 떠난다는 미래의 환영을 마주한 루이스. 그녀에게 미래는 아직 닥치지 않았으므로 스스로 ‘진실’이라 인정하지 않으면 그뿐이다. 하지만 루이스는 이안과 첫 포옹을 한다. 그리고 미래를 기꺼이 받아들이겠노라는 그녀의 독백.


“Despite knowing the journey and where it leads, I embrace it. And I welcome every moment of it.”


우리의 시간은 태양의 뜨고 짐, 지구의 자전에 의해 결정된다. 한 공간에 존재한다면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똑같은 시간이 주어진다. 적어도 이 세상에서 차별받지 않는 유일한 것이 있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위로로 다가온다. 다른 언어를 익히며 또 다른 사고의 틀을 습득한다는 영화 속 메시지는 인식의 전환만으로도 ‘시간’의 절대성을 극복할 수 있음을 전하려는게 아닐까.


우리는 필연적으로 마주할 죽음을 부인하곤 한다. 순간과 영원을 의미하는 언어, 어휘들은 그 증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죽음을 매번 상기해야 하는 이유는 죽음의 직전, 바로 그 순간에 삶이 있기 때문이다. 찰나의 중요성은 여기에 있다. 누구보다 긴 시간을 살고 싶은가? 무수히 많은 ‘직전의 삶’을 떠올려보자. 그리고 기록하자. “‘회상’이야말로 유한한 삶을 무한한 풍경 속에서 바라보게 만든”(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프루스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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