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감정 끌어안기

당신의 감정은 내 것이 아닙니다

by 플랫화잍

꽤 지났지만, 아직도 생생하게 남는 기억이 있다. 상습 지각과 흡연으로 학급 학생과 갈등이 있었다. 그날도 그랬다. 아이는 등교한 지 한 시간 만에 학급을 뛰쳐나가 교육청에 나를 폭력 교사로 신고했다. 그 아이의 신고 대상은 무척 다양했는데, 담임이던 나를 비롯, 학생부 부장 교사부터 체육, 기술, 미술과 같은 기타 과목 담당 교사를 거쳐 졸업 무렵에는 교장 선생님까지 신고 리스트에 들었다.


교육청에서 나와 아이에게 상담교사를 붙였다. 신고 정황을 파악하고 둘 사이에 누가 문제가 있는지 따져보라는 것인데 당시 상담교사는 나와 아이에게 심리 상담 및 정식 MBTI 검사를 권유했다. 상담 선생님은 나와 갈등하던 그 아이의 유형 검사지를 나란히 펼쳐두고 당신들의 감정싸움이 일어나는 이유와 서로의 성향이 얼마나 극단에 치우쳐있는지, 그러므로 너희의 갈등이 왜 필연인지 열심히 해석해주셨다. 사실 해당 사건에 내가 기여한 부분이 있다는 사실부터 수긍하기 어려웠다. 무력한 처지였던 나는 그저 ‘그러네요’라며 고개만 끄덕일 뿐이었다.

이런저런 이유로 교사 생활과 임용 고사 준비는 그 학교를 마지막으로 접었다. 이후 여러 성격유형검사를 공부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날의 기억이 틈날 때마다 떠올랐다. 성격 유형 검사에 기반한 상담이란 족집게 점쟁이가 누군가의 얼굴을 뜯어보며 “고민이 있구먼!”이라 툭 던지는 것과 비슷했다. 당신의 고민은 타인과의 관계에서 상호의존적으로 발생했고, 해결책은 당신 안에 내재되었노라는 ‘연기설’과 ‘필연론’의 짬뽕. 타자의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게 되면 저절로 해결의 실마리를 찾게 된다고도 했다. 모든 일은 ‘나’로부터 비롯됨을 머리로는 수긍했지만, 가슴으로 인정하기는 어려웠다.


감정과 성격이라는 극히 개인적인 기질이 모든 사건의 원인으로 지적받는 건 온당치 못하다. 상황과 맥락에 의해 달라지는 인간관계를 개인의 심리나 성격유형으로 단정 짓는 입장에도 동의하기 어렵다. 왜 늘 인간관계의 모든 귀결은 ‘나’ 여야 하는 건가. 묻지도, 요구하지도 않은 타인의 감정까지 1+1으로 가져갈 생각은 없다. 인간관계로 인해 발생하는 내 감정까지만 책임지면 안 될까.


주변 사람에게 사랑받고 싶은 마음, 유능함을 인정받고 싶은 마음, 내가 좋은 사람이라 증명하고 싶은 마음 등 타인의 감정에 개입하려는 애씀은 정작 내 마음을 돌아볼 여지조차 앗아가고 만다. 그런 좁은 소갈딱지로 사회생활을 어찌하려느냐는 핀잔을 들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인간관계에 대한 많은 물음의 대답이 ‘나’라는 사실은 타인의 감정 영역으로부터 빠져나와 ‘내 감정’에 더욱 충실하라는 의미로도 해석할 수 있지 않을까. 어쩔 수 없다. 아직 나는 그 질문에 명쾌하게 대답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고, 따라서 복잡하고 다단한 내 감정만을 짐보따리처럼 껴안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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