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 명료한 달리기의 매력
모처럼 새벽에 천변을 뛰고 걸었다. 밝게 벌어지는 하늘 귀퉁이를 보며 무릎과 발목을 깨웠다. 몸이 서서히 덥혀지고 땀이 나기 시작하면 천천히 달려도 보고, 뛰어보기도 했다. 야트막하게 흐르는 물 위로 피라미들이 톡톡 튀어 오르며 햇빛을 반사한다. 풍경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다.
구에서 조성한 꽃 정원을 지나 다리를 건너는 코스 중간에 이르면 늘 마주치는 할아버지 한 분이 있다. 그분은 나와 엇비슷한 속도로 뛰지만, 내가 뛰다 걷다 하는 탓에 늘 나를 앞질러 저만치 사라지곤 했다. 오랜만에 그분을 마주친 터라 내심 반가운 마음에 페이스 맞춰 뒤따라 달렸다. 그러고 보니 할아버지의 오른쪽 발과 왼쪽 발의 불균형으로 중심축이 옆으로 기울었다. 운동화를 신은 할아버지의 오른발은 자꾸 왼발을 툭툭 건드렸고 뒤에서 바라보는 모습은 자기 발에 걸려 곧 넘어지려는 것처럼 위태로웠다.
한참을 어르신을 따라 뛰었다. 숨이 차서 속도가 더뎌진 사이 그분은 벌써 저만치 앞서 달려가셨다. 넘어질 듯 넘어지지 않으며, 제 속도를 그대로 유지한 채. 나는 할아버지의 뒷모습을 시선으로 좇았다. 그의 묵묵한 뒷모습은 출발하자마자 돌아갈 지점을 가늠했던 내 태도를 돌아보게 했다. 무엇이 그분을 지속적으로 달리게 한 걸까. 피로나 부상, 골절의 위험에도 불구하고 몸을 움직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나는 저리 열심이지도 못할 거면서 왜 다시 달리려는 결심을 하려는 거지. 숨 고르며 걷는 내내 머릿 속에는 무수한 질문이 들고난다.
반환점을 돌아가는 길엔 어느새 한 무리의 사람들이 뛰거나 걷는다. 달리기는 심박이 올라가고 가쁘게 숨을 몰아쉬며 몸에서 열을 발생하는 작용이다. <뛰는 사람>의 저자 베른트 하인리히는 ‘달리기’란 에너지를 비축해 오래 지속하려는 자연의 작용을 거스르는 일이라 말한다. 다시 말해 달리기는 자기 몸을 연료 삼아 태우는 활동이니 몸을 축내는 일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베른트 하인리히는 달리는 중에 우리 몸에서 일어나는 ‘보수 메커니즘’에 주목한다. 저자는 몸의 상처를 치료할 때 작동하는 회복과정을 ‘보수 메커니즘’이라 일컫는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경미한 상처가 자극을 받아 이전보다 더 건강한 상태가 되는 역노화 과정이 일어날 수 있다고 말한다.
노화를 거스를 수 있다는 가능성은 사람들의 시선을 끌기 좋지만, 나는 상처를 자극해 이전보다 ‘더’ 건강한 상태가 된다는 점에 방점을 찍어본다. 습관과 경험, 편견과 고정관념은 우리를 ‘정의’라는 틀에 가두기 쉽다. 보수 메커니즘은 우리가 언제든 변화할 수 있는 존재임을 일러준다. 그러니 속단하지 말고, 내가 원하는 모습, 자신을 담아낼 그릇을 골라보라는 강렬한 메시지도 전한다. 베른트 하인리히가 달리기의 세계에 매료된 이유를 ‘단순 명료함’에서 찾는 것도 그 연장선에 있을 터다. ‘지금’이라는 트랙 위 ‘우연’에 맡겨보는 것이다.
가만 생각하면 촘촘하게 읽고 종이에 뭔가를 열심히 쏟아붓던 날에는 늘 뛰고 걷는 일상이 있었다. 내면의 불안과 대조적인 바깥의 풍경을 바라보며 달리는 일은 몸과 마음을 관조하게 만든다. 시도도 하지 않고 의심하고 주저했던 경험, 나와 맞지 않는 목표로 실망했던 시간, 거듭 수정해도 여전히 엉망인 초고는 늘 좌절로 다가온다. 이런 사실을 뒤로하고 다시 운동화의 끈을 단단히 묶는 것은 ‘오늘만큼의 힘’을 내겠다는 결심이다. 동시에 재미있고 신나는 날이 시작될 거라는 기대도. 딱 오늘만 달려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