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
금은 밟지 말라는 뜻에서, 선은 넘지 말라는 뜻에서 설정된다. 금은 타인을 통제하기 위해서, 선은 나 자신을 통제하기 위해서.
<한 글자 사전> 김소연, 마음산책,p 45
“자! 여기까지.”
경계를 가르거나 점과 점을 연결할 때, 똑바른 선을 긋기 위해 우리는 ‘잣대’를 동원한다. 손가락이 채 여물지 않던 시절엔 흔들리지 않게 있는 힘을 다해 자를 눌러도 선은 갈 길을 잃기 일쑤였다. 이후에도 오랫동안 눈금이 빼곡히 들어찬 자는 필통의 한 자리를 차지했다.
잣대의 역사는 ‘도량형’ 제도와 맥을 같이 한다. 물론 그 전에도 잣대는 존재했을 것이다. 가루나 알갱이를 담을 때 볼록하게 올라온 부분을 평평하게 깎아낸다거나, 옷감을 마름질할 때, 말썽 부린 뉘 집 개똥이의 응징에도 여지없이 길쭉한 형태의 막대기가 동원되었겠다. 하지만 통일된 간격의 눈금이 새겨진 자가 등장하면서 ‘잣대’는 보다 기능적으로 변신한다.
‘등가’로 물건을 교환하기 위해서는 하나의 통일된 기준이 요구된다. 옆 마을과 그 옆 옆 마을이 하나로 어우러지는 장터의 거래는 당연히 공정해야 한다. 그릇에 담긴 쌀이 한 됫박임을, 옷감의 가로나비가 두 폭임을 틀림없이 증빙하는 기준, 표준이 자의 역할이다. 그래서 우리는 ‘잣대’를 ‘척도(尺度)’라는 한자어로 관용적으로 사용하기도 한다.
물질적 척도든, 가치의 기준이든 중구난방이던 데이터를 하나로 통일하는 것은 당시 군주의 막강한 권력을 의미했다. 도량형을 정비해 상업을 권장하고 권력을 다져 중국을 통일한 진시황이 그러했다. 전 세계 모든 고대 국가의 왕이 한결같았다. 멀리 갈 것도 없이 혼천의나 측우기, 공정한 거래를 감시하기 위한 휴대용 자인 유척은 세종대왕이 쫌생이에 집착남이 아니라 권력의 최정점에 있었노라는 증거가 된다.
상황에 따라 가변적으로 늘었다 줄었다 멋대로 휘었다가 꺾여버리는 잣대는 아무 소용이 없을 것이다. 이런 일상 속 메타포는 잣대가 단순한 교류의 편의성을 도모하기 위한 것에서 한 발짝 나아가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과도 관련이 깊음을 알게 한다. 내가 하면 구국의 결단이 되는 일이 남이 하면 야합이 되어버리는 요즘의 세태는 ‘잣대’의 존재를 되묻게 한다.
흔히 우리에게 ‘금’이란 나를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경계일 수도 있고, 수준이나 정도를 의미하는 ‘선’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다. 나의 잣대는 오직 나에게 더욱 엄중히 들이댈 일이며, 내가 그은 금 안에 타인을 가두지 않아야 한다. 스스로 금을 그어 여기가 끝이라 단정 짓는 모습도 아니라면 더 좋겠다. 수평선 너머 하늘과 바다를 주황빛 금으로 가르며 떠오르는 해를 본 사람이라면 ‘금’이나 ‘선’이 넘지 말아야 할 무엇이 아니라 새로움이 열리는 시작임을 깨닫게 될 것이다. 꾸준히 남기는 우리의 글처럼, 나는 ‘금’이 아직 끝에 도달한 게 아니라는 증거였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