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 쓰기의 무력함

by 플랫화잍

아이들이 어릴 때 이즈음이면 공주 드레스를 입고 손이 사탕 바구니를 들고 등원 버스를 타던 다른 유치원 아이들을 부러워하곤 했다. 저녁 어스름에는 근처 어학원 선생님이 반짝이는 야광봉을 들고 아이들을 인솔해 놀이터에서 사탕을 나눔 했다. 친구 집이나 키즈카페에서 같이 놀았었다는 옆 친구의 자랑 섞인 경험담을 들으며 사교성 떨어지는 엄마 탓에 늘 집에만 있었던 우리 아이들은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글쎄 이 아이들이 조금 더 컸더라면, 좋은 가을을 각자의 친구들과 즐기고 오겠노라 말했다면, 나는 그 아이들을 가지 말라 붙잡을 수 있었을까. 더 아득한 건 그런 상황에서 나는 아이에게 재미있게 놀다가 들어올 때 택시타고 오라며 용돈을 쥐어주었을 것 같아서다. 성인이 되고 처음 맞는 핼러윈이라 용돈을 줘서 이태원에 보냈다는 어느 엄마의 사연이 마치 내 이야기 같아서 가슴이 조여왔다.


아침부터 정해진 일정들을 챙기며 ‘읽고 쓰기’가 과연 삶을 조금이나마 나아지게 하는가를 생각했다. 나는 강의처에서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일이 누군가의 삶은 아니더라도, 내 삶을 좀 더 낫게 꾸릴 수는 있더라고. 더 나은 내가 되어 영향력을 나누면 된다고 입버릇처럼 말하고 다녔다. 미약하나마 그런 삶을 살아낸다는 사실에 뿌듯했다. 그런데 지금은 저 말이야말로 그럴듯한 자기 위안이고 미천한 정신승리에 지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세상이라는 견고한 벽 앞에 어찌할 바를 모르고 내가 운신할 수 있는 공간에 선을 긋고 자기 방어를 했던 것에 불과했다. 그들보다 빨리 태어났고, 조금 더 운이 좋아서 내 영역만 간신히 지켜냈을 뿐이다. 아무리 읽고 써도 현실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는다. 여기저기 인용되는 비좁은 골목 사진은 8년 전 차가운 바다사진만큼이나 아득하다. 그들은 우리와 다른 세대다. 학교에서 생존 수영과 CPR, 안전 교육을 받으며 성장했다. 그 교육은 알아서 구명줄을 잡고, 요령껏 탈출하라는 기성세대의 의도였던가. 참담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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