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란 무엇일까

축하합니다.

by 플랫화잍

만일 내가 “공부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받는다면, 읽기나 생각하기라기 보다는 ‘쓰기’라고 답할 것이다. 공부는 내가 모르는 것을 알아가는 과정인데, 내가 무엇을 모르는지 아는 것은 쓰는 과정을 통해서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새로운 언어를 위해서 쓴다> 정희진, 교양인, p.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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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창 책육아를 했던 시기, 도서관에서 세 아이의 책을 잔뜩 빌려 집으로 나르면서 고민은 커져갔다. 고민의 정체는 책을 ‘잘’ 읽는 법이었는데, 그건 책을 빌려다 쌓아주는 것으로는 해결되지 않았다. 내 고민의 끝이 닿은 지점은 독서토론이었다. 사람이 지난 곳에는 어떤 식으로든 길이 나게 마련이다. 책이 머무는 곳에는 언제나 좋은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기꺼이 내게도 자리를 내어주었고 그런 인연으로 혼자 즐기던 책읽기를 나누며 산다.


지난 화요일, 분당도서관 리더 중급과정이 종강을 맞았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좋은 기회로 많은 선생님들의 독토 리더 과정을 함께 했다. 마지막 날은 늘 감회가 새롭다. 4개월, 16회차. 참여자들은 매주 한 권의 책을 읽는 것에 그치지 않고 논제를 뽑고, 직접 자기 논제로 토론을 진행해야 한다. 그뿐인가, 더 나은 토론을 위해 자신의 논제를 재검토하고 면밀히 퇴고하는 과정도 포함된다.


촘촘히 읽는 것부터 보탬이 되는 말하기와 쓰기까지 신경을 써야 하니 강의 초반에는 여기저기서 “책 읽는 재미가 예전 같지 않다 “, ”꼭 이렇게까지 해야 하느냐 “라는 푸념 아닌 푸념도 듣는다. 같은 과정을 거쳐왔으니 그분들의 마음에 백 퍼센트 공감할 수 있다. 사람들 사이에서 보다 넓게, 좀 더 깊이 읽고 듣다 보면 깨닫게 된다. 내가 보고 싶은 것만 봤고, 듣고자 하던 말만 들어왔음을. 바로 이 순간, 독서토론 진행자가 탄생한다.


토론 진행을 하고 글을 쓰며 사람들을 만난다. 늘 운이 좋았다. 벽이라 생각했던 곳에는 언제나 문이 있었으니. 어디에서 이런 ‘열심’와 ‘열정’을 만나겠는가. 설거지를 방금 마쳤거나 아이들과 실랑이하며 학교나 유치원에 보냈을 줌 화면 속 그들은 단정하고 진중하다. 읽고 발제하는 고통에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지 못했다는 무거운 마음까지 부담으로 얹어졌을게다. 그러니 그녀들의 말간 얼굴이 더 애틋할 수밖에.


열여섯 번의 수업을 통해 전달하려던 것은 심오하거나 거창한 지식이 아니다. 기술적 측면의 지식이라면 인터넷에도 차고 넘친다. 독토 리더는 상대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자기 검열에 갈등하는 참여자를 웃겨주며, 쭈뼛대는 참여자의 입을 근질거리게 만들어야 한다. 그들이 ‘다음’을 도모하려는 기꺼운 마음으로 ‘함께’라는 가치를 추구하게 만드는 일이다. 사람과 만나러 가는 길을 마련하고, 소통하는 데에서 의의를 찾는다. 그 길 어딘가에서 스스로 ‘전문성’을 갖추며 더 나아가 누군가에게 길을 열어줄 수 있다면 더없이 감사할 일이다.


여행은 다시 돌아오기 위함이다. 다시 떠나는 꿈을 꾸게 만든다. 책도 같다. 독서는 활자와 언어 너머 세상으로 나섰다가 다시 내게로 돌아오는 과정이다. 이제 그들은 책 너머로 즐겁게 떠날 수 있겠지. 함께하는 책친구가 있으니, 보다 밝아진 눈으로 저마다의 느낌표를 찾아내리라. 쨍한 8월 더위에 시원한 얼음물을 앞에 두고 이들과 만났는데 어느새 찬바람 부는 12월이다. 무척 힘들었노라는 한 참여자의 엄살에 화면 속 그녀들과 내가 허허허 웃다가 이내 말꼬리가 흔들리고 눈시울이 붉어진다. 이게 뭐라고. 근사한 집을 짓겠다는 욕심보다 작은 벽돌 하나 쌓는데 의미를 두어야지. 나도 새롭게 결심한다.


“우리의 책읽기는 기분 좋은 향유의 시간이었습니다. 앞으로도 쭉 누구도 다치지 않는 무해한 욕망을 추구합시다. 여러분, 종강을 축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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