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하는 거 좋아해요?
그 시절 우리에게는 수많은 벽이 있었다. 그 벽에 드리워지는 빛과 그림자의 명암도 뚜렷했다. 하지만 각기 다른 바위에 부딪쳐 다른 지점에서 구부러지는 계곡물처럼 모두의 시간은 여울을 이루며 함께 흘러갔다. 어딘가에 도달하기 위해서 말이다.
<빛의 과거> 은희경, 문학과 지성사,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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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년 2월, 대학 OT가 열리는 리조트로 향하는 버스 안. 앞자리부터 마이크가 넘겨지며 한 명씩 자기소개가, 그리고 노래 한 소절 뽑으라는 뒷자리 선배들의 요청이 이어졌다. 내 차례, 스무 살 나는 쭈뼛거리며 마이크를 넘겨받았다. 이런 게 대학생활이라는 건가. 도망치고 싶던 순간이었다. 이런저런 단체행사 이후 조별 모임 시간, 내 옆자리에 앉은 선배가 말을 걸었다. 노래를 좋아하는 사람이 모인 소모임이 있다고. 낯선 대학교에서 사람들과 친해지고 싶으면 언제든 환영한다는 선배들의 고정 레퍼토리 같은 그런 말이었다.
통기타와 포크송, 민중가요의 세상이 눈앞에 펼쳐졌다. 처음 누려보는 나만의 시간과 자유 앞에서 딱히 마음 기댈 곳은 없었다. 발걸음이 닿던 곳이라고는 늘 학생회와 노래 소모임뿐이었다. 그곳엔 악보가 있고, 기타를 치는 선배들이 늘 있었으니까. 학생회 일지와 소모임 일지는 내 일기장이었다. 수업은 수없이 빠졌지만 일지 적는 것은 빼먹지 않았다. 끼적이고 있노라면 사람들이 하나둘 모이고 같이 기타 치고 노래를 불렀다. 지는 해를 함께 보며 다시 노래를 했다. 동터오는 하늘을 보며 다 쉰 목소리로 또 한 곡조 뽑다가 라면을 먹으러 학생식당으로 몰려가던 어느 새벽. 그때만큼은 외롭지 않았다.
첫 공연도 올렸다. 채 10명도 안 되는 인원으로 대강당을 빌리는 건 무리였다. 사람들이 많이 지나다니던 학생회 건물 로비에 무대를 깔았다. 앰프와 마이크를 빌리고, 선곡과 편곡도 했다. 학생회 대자보를 휘갈기던 솜씨로 티켓과 포스터를 만들었다. 오늘 그때 녹화 비디오를 복원했다고 선배가 영상 클립 하나를 보냈다. 세상 근심을 모두 짊어진 것처럼 심각했는데 25년이 흘러 다시 들추니 많이 앳된 얼굴이다. 공연을 한번 더 준비하고 나는 이듬해 학교를 자퇴했다. 회장인데 후배들을 책임지지 않고 도망쳤다는 가책도 아직 남아있다.
노래가, 함께 노래해준 사람들이 있어서 에둘러 가는 다른 길을 생각할 수 있었다. 까마득한 벽 앞에서 버텼다. 어쩌면 벽은 숨을 가다듬고 기댈 수 있는 여지를 준 것인지도. 천지인과 청계천 8가. 꽃다지와 노래만큼 좋은 세상, 장산곶매와 조국과 청춘. 아련한 기억을 어제처럼 되살리는 마법의 주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