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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플랫화잍 Dec 14. 2022

7. 삶의 균형감각 유지하기

나를 일으키는 마법의 주문

저는 뭔가를 깊이 생각해서 쓰고, 그리고 하는 걸 좋아하지 않습니다. 열심히 하지 않아요. 이렇게 말하면 ‘대충 한다’고 바로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이 많지만, 대충 한 게 더 나은 사람도 있답니다. 저는 그런 사람 중 한 명이지 않으려나요.


<안자이 미즈마루: 마음을 다해 대충 그린 그림>, 안자이 미즈마루, 씨네 21북스, 2015

ㅡㅡㅡ


어느 날 갑자기 내게는 주부이자 아이 엄마, 강사이면서 학생, 글쓰기 교사이면서 토론 진행자라는 타이틀이 생겼다. 이들 중 대표 자아를 꼽으라면 아이를 키우는 엄마이면서 글 쓰는 사람을 들겠다. 여러 자아가 생긴 것만큼 바빠졌는데, 특정한 한 가지 모습에 올인하지 않아도 되어 좋다가도 과연 “나는 얼마나 절박한가”를 되묻곤 한다.


사실 여러 자아를 운용하는 것은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후로 쭉 해왔던 일이다. 학생이면서 과외 교사였고, 꾸준히 연애도 했고, 여러 다른 모임들을 꾸려왔으니까. 요즘 내게는 ‘학생’이라는 타이틀이 매력적으로 와닿는 것 같다. 누군가와 앎을 주고받으며 형성되는 끈끈한 소속감과 달콤한 유대에 이끌려 오래도록 학생이고 싶은 건지도. 누군가의 긍정적 평가에 기꺼워하며 말이다.


아이들이 내 대표 자아처럼 여겨졌을 때 나는 수시로 도서관을 들락이며 매일 밤 아이들이 읽은/읽을 책 목록을 정리했다. 그때 마음이 간절 그 자체였다. 아이들에 대한 주변의 평가는 곧 내 존재 가치를 의미했다. 다시 내 일을 시작하니 집에서 아이들과 씨름하며 어렵사리 얻어낸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잘하고 싶은 마음,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능력치보다 앞서며 종종 절박해졌다. 자의 혹은 타의로, 내게 일을 맡긴 쪽이나 측근으로부터의 긍정/부정적 평가는 이런 마음에 부채질을 해댔다.


이 순간! 어느 하나에만 집중하고 싶은 마음을 분산시킬 수 있는, 반대급부의 일이 필요하다. 숫자로 평가받지 않고, 오직 내 느낌과 직관에만 의지하며 내가 원할 때 시작하고 끝맺음할 수 있는 일. 눈앞의 현실을 다른 방식으로 표현하고, 드러내고 싶지 않은 일은 보기 좋게 포장해 덮어버릴 수 있는 일, 지금 내게는 ’글쓰기’다. 비록 문장이 풀리지 않을 때엔 막막하더라도 글쓰기의 속성이 원래 그런 것이라며 주체적으로 영위할 수 있다는 사실에 위로받을 수는 있더라.


“내가 작가는 아니잖아?”,

“난 나 좋으라고 쓰지. 안되면 마는 거고.”


절박해지려는 마음으로부터 적당히 거리를 유지하며 생활의 균형을 잡으려는 지혜. 어쩌면 안자이 미즈마루 씨의 ‘대충’은 이런 맥락이 아닐까. 어느 하나의 자아에 맹렬하다 보면 상심도 크다. 인생을 갈아 넣은 만큼 본전 생각도 나게 마련이다. 당장 성과가 보이지 않는 일에 이런 균형감각은 세월을 거듭하며 빛을 발할지 모른다. 그러니 자책하거나 포기하지 않고 여러 일 사이 균형을 유지하는 자세도 중요하다.


<더 좋은 곳으로 가자>에서 작가 정문정은 ‘목표’가 전부는 아니라 말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중요하다고 믿는 것들을 양손에 달걀처럼 들고서 오래 걷는 균형 감각“이라고. 더 건강한 자아를 만들기 위해 일과 나 사이 거리를 두어야 한다. 때려치우고 싶은 순간이 무시로 찾아든다면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릴 때가 온 것이라 생각해보자. 누군가의 긍정적인 피드백을 이정표 삼아 세워두고. 바로 그때, 단순한 호의라 믿고 싶었던 타인의 말들은 나를 일으키는 마법의 주문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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