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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플랫화잍 Sep 15. 2022

8. 내 삶을 사랑하기

돌고 돌아 지금 여기

삶을 사랑할 수 있는 비법은 없지만 많이 배울 수는 있다. 망상을 버리고 타인과 자신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는 사람, 계속 밖으로만 나다니지 말고 자신에게 가는 길을 배울 수 있는 사람, 생명과 사물의 차이를, 행복과 흥분의 차이를, 수단과 목적의 차이를, 그리고 무엇보다 사랑과 폭력의 차이를 느낄 수 있는 사람은 삶에 대한 사랑을 향해 이미 첫걸음을 뗀 셈이다. 첫걸음을 뗀 후엔 다시금 질문을 던져야 한다. 그 질문에 맞는 의미 있는 해답을 이런저런 책에서도 찾을 수 있겠지만, 대부분의 답은 자기 안에 있을 것이다.(p.44)


<우리는 여전히 삶을 사랑하는가>, 에리히 프롬, 김영사

ㅡㅡㅡ


이십 대, 나는 이유모를 영어 앓이를 했다. 외국에 나가고 싶었던 것도 아니고, 딱히 영어가 필요한 전공도 아니었다. 어학연수도 관심 밖. 그저 영어로 된 텍스트 읽기를 즐겼다. 당시 신촌 파고다 어학원 원어민 샘과 ‘생선회’를 주제로 더듬더듬 이야기를 나눴던 좋은 기억이 있더랬다. 영어 회화부터 토익, 영화 영어, 실용 영어, IELT시험 준비까지 한 번씩 다 거쳐보았다.


그러다 결혼, 임신과 출산을 거치며 살림에 재미를 ‘붙이고’ 싶었다. 이는 존재 증명과도 같았다. 산달 전까지 베이킹, 비즈공예, 리본공예, 코바늘 뜨기, 퀼트, 홈패션, 미용 커트를 배웠다. 손을 꾸준히 놀리는 동안 깨달은 바가 컸는데, 나라는 사람은 손재주와 눈썰미는 좋은 편이라 결과물의 완성도는 높았으나 단순 반복 작업에 쉽게 싫증내고 같은 결과물을 여러 개를 생산할 수 없으며, 또 첫 끗발이 개끗발이라 생각하는 탓에 꼼꼼하게 마무리하려는 몹쓸 괴벽이 작동, 작품을 하나 만들어내는 건 고려청자를 제작할 정도의 공과 노력을 쏟는다는 사실이다.


그 와중에 몸을 쓰는 것도 좋아해서 꾸준히 운동을 배워 왔는데 스쿼시와 수영은 체력 좋은 이십 대에, 무에타이는 애 둘 낳고 나서, 그리고 지난달까지 필라테스를, 현재는 요가를 꾸준히 해나가는 중이다. 글러브 끼고 샌드백을 치고 차는 운동이 꽤 적성에 맞았는데, 신나게 샌드백을 펀칭하는 날은 하루 종일 싱글벙글 기분이 좋았다. 솟구치는 파괴본능을 잠재우고자 주짓수를 배우고 싶으나 땀 흘리며 누군가와 몸 씨름하는 운동인지라 꺼리게 된다. 퍼스널 스페이스가 중요해진 요즘인 데다 격한 운동은 상대적으로 남성 회원들이 많기도 하고.


한창 아이들을 키우면서는 육아법과 잠수네 공부법, 독서법을 배우러 이곳저곳 물어물어 다녔다. 백화점 1회 무료 강의부터, 문화센터, 도서관 강좌를 거쳐 현재 일하는 학당의 유료 강의까지. 노안이 왔지만 아직 책을 읽을 수 있고, 키보드를 두드리다 손가락이 저릿한 날도 가끔 있지만, 책과 토론으로 사람을 만나는 일은 누군가와 ‘배움’을 매개로 교감하는 일이라 당분간 오래 즐거울 예정이다.


2022년 9월의 어느 밤 부엌 식탁에 앉아 가만 생각하니 결국은 이리 되려 돌고 돌아온 듯 싶다. 그렇다고  “모든 것은 ‘지금’으로 통한다”는 깔때기적 운명론의 신봉자는 아니다. 내 배움의 기록은 어느 하나 성공한 것도 없고, 이렇다 할 성과도 없는 실패와 좌충우돌의 결과물이다. 배움 중독자의 자기 변론일지도. 혹은 미래에 대한 불안을 달래기 위한 방편으로 늘 ‘배움’을 택해온 것인지도 모른다.


아직 궁금한 것이 많다. 어째서 나는 지금 이 자리에 있는지, 그 사람과 나는 어째서 이런 관계에 놓였는지, 남과 다르게 살아보려 시작한 나의 배움은 어째서 늘 ‘남과 같은 나’, ‘나와 같은 남’을 발견하는 과정이 되는지 말이다. 수많은 물음표를 뒤로 하고 오직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결심한 방향으로 다시 한 발을 내딛는 것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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