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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플랫화잍 Dec 16. 2022

스물한 살의 소고

치열하게 미친년이 되어보자

그녀에게 ‘미친년’은 주체적 응시와 실존감을 깨달은 존재다. 남성의 자리를 넘보기 때문에 ‘시건방진년’으로 불리고, 옷을 제멋대로 입고 가부장 질서를 따르지 않기 때문에 ‘잡년’이라 불리는 여자들이다. 따라서 ‘미친년’은 더 이상 욕이 아니다. 중심을 지키려는 남성들이 ‘꼴 보기 싫어(두려워)’하기 때문에 새로운 가능성을 가지는 희망이다. 나는 어지르고, 흐트러뜨리고, 무너뜨리는 박영숙과 ‘미친년’들의 사진이 신난다. ‘미친년’들이 만개할 세상이 설렌다


<태도가 작품이 될 때>, 박보나, 바다출판사, p.73




자퇴를 결심하던 무렵의 이야기다. IMF 광풍이 몰아쳤다. 동기들은 군대를 갔거나 휴학을 했다. 나는 손위 남자 형제나 여자 형제가 없었다. 스물한 살이 되면, 친구들이 몽땅 사라질 수도 있었다. 개강 첫날 전공 수업인데 모르는 얼굴 투성이었다. 복학생이란다. 맨 뒷자리를 서로 앉겠다고 다투던 친구들과는 다르게 각 잡힌 머리, 목까지 단추를 올려 채운 체크남방, 청바지와 썩 매칭 되지 않는 나이키 운동화를 신은 그들은 서로 교수님의 침이 튀기는 범주 안에 앉으려 애썼다.


몇 안 되는 여자 후배라는 걸 알고 난 뒤에 그들은 선선히 밥을 사주었고, 어쩌다 내가 턱걸이로 수업을 들어가는 날에는 앞자리를 맡아두었다며 책상 위 책을 치워주기도 했다. 티격태격 당구 못 친다고 구박하던 친구들이랑은 딴판이라 일시적으로 “남자는 군대를 다녀와야 사람이 된다”는 군대 예찬론자가 되기도 했다.


나른한 오후였다. 식곤증에 졸려서 책상에 엎드려 조는데 선배들이 낄낄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제트호티가.. 어쩌고, 변강쇠가 저쩌고. “ 뒤통수가 간지러운 느낌에 벌떡 일어났더니 주변에서 이야기를 나누던 선배들이 흠칫 놀라는 척을 했다.


”우리 착한 애기는 모를 거야. “

”몰라도 되는 거지. “


이상하게 배알이 꼬였다. 궁금증도 극에 달했고. 꼬치꼬치 캐물어 ‘누들루드’라는 제목의 만화책 이야기라는 정보를 입수했다. 동네에 도착하자마자 단골 책대여점에 갔다. 돈을 묻어두고 장르불문 책과 비디오를 빌렸던 곳이다.


“사장님, 누들 루드라는 만화책이 요즘 잘 나가요?”

“그렇긴 한데.. ”


사장님은 고개를 갸웃하더니 말꼬리를 흐리며 책이 꽂힌 곳을 가리켰다. 신간은 이미 대출되고 손때 너덜한 두 권을 들고 나왔다. 제목은 <누들루드>가 아니라 <누들누드> 였고, 양영순이라는 작가의 성인만화였다. 주인공 이름도 ‘제트호티’가 아니라 당시 인기 많았던 아이돌 HOT의 이름을 따서 ZOT였던 것.


고등 시절 할리퀸부터 각종 로맨스 소설과 만화와 비디오를 섭렵한 나는 웬만한 야설에는 눈도 끔뻑하지 않을 자신 있다… 고 생각했다. 착각이었다. 여고생이 소화할 수 있는 야설과 남성이 소화할 수 있는 야설은 차원이 다른 것이었다. 지금 와서 하는 말이지만, 그날의 문화적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 이후로 지금까지 나는 남성들이 한데 모여 낮은 톤으로 낄낄거리는 꼬락서니를 견디는 게 어렵다.


다음 날부터의 처신이 걱정되었다. 그들이 나를 보고 뭐라 할 것인가. 또 나는 그들을 보며 무엇이라 소감을 이야기해야 하나. 요령 없고 쓸데없이 진지했다. 학교에 가는 버스 안에서부터 얼굴이 홧홧 달아올랐고, 무슨 말인지 모르고 선배들을 따라 웃었던 내 입을 찢어버리고 싶었다. 그들과 좀 멀찍이 앉은 나에게 지금은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 누군가가 인사 대신 건넨 ”찾아봤어? “라는 말. 나는 폭주하고 말았다.


”고작 그런 거였어요? 그런 거 난 이미 고딩때 마스터했는데, 군대 다녀와서도 왜 아직 그 모냥인거에요? 그러니 여자 친구가 없죠.”


적막이 감돌던 그날의 강의실을 잊을 수가 없다. 나는 싸가지 없고 되바라진 년이 되었다. 야한 농담이 술잔을 타고 한순배 돌 때,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는 스킬을 배웠다. 시선의 화살이 나에게 꽂힐 때 쏘아붙일 한마디 비수 같은 말도 늘 품고 다녔다. 그들은 다시는 내 앞에서 누들누드 이야기를 꺼내지 못했다. 새 시즌이 나왔다고 자랑스레 이야기했던 건 오히려 내 쪽이었으니. 그들에게 세상 사람은 여자 아니면 남자 그리고 미친년으로 구분되었다. 지금도 나는 그들에게 여성으로 다가가느니, 차라리 미친년이길 선택하겠다. 그러다 가끔 등교하던 버스에서 느껴지던 얼굴 달아오르는 그날의 느낌이 떠올라 아득해지곤 한다. 내 아이들이 직장 상사로, 또는 멘토로 모실 그들을 생각하면 말이다. 우리는 좀 더 치열하게 미친년이 되어야 한다.



*사진 인용은 프라미싱 영 우먼(2020)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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