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일상다담

콩은 콩을 낳고.

자연의 이치란.

by 플랫화잍

“지갑 챙겼어요? 목도리는요?”


남편은 자상하다. 심지어 꼼꼼하다. 자상함에 매사 꼼꼼을 기본값으로 탑재한 이 사람은 돌발 상황을 예측이라도 하듯 치밀하다. 화장실에서 손을 씻었는데 핸드 타월이 똑 떨어졌다? 그의 바지 뒷주머니에는 늘 손수건이 있다. 1박 2일 여행을 갔는데 폼클렌징을 못 챙겼다? 그의 파우치에는 클렌징부터 에센스, 선크림까지 들어있다. 그의 가방 취향은 별도의 주머니가 몇 개 달렸는지, 주머니 위치가 얼마나 기능적인지에 따라 갈린다.


그를 만나기 전까지 나는 계획형 인간이라 생각하며 살았다. 큰 착각이었다. 이 사람을 만나는 날엔 덤벙대다 뭔가를 잃어버리기 일쑤였다. 소개받던 첫날 나는 우산을 잃어버렸고, 그는 내 손에 자기 우산을 선뜻 들려 보냈다. 두 번째 만났던 날, 그는 내 지갑을 찾으러 영화 상영 시간 임박해 30분 거리를 15분 만에 왕복 주파했다. 나의 모자람을 기꺼이 채워주는 넉넉함이라니.


이제와 생각하면 다 저 좋아서 그런 건데, 그땐 뭐 그리 황송했던지. 카페에서 내 지갑을 챙기던 당시 남자친구와 엑셀과 파워포인트로 여행계획을 분 단위로 쪼개 세우는 현재의 남편 사이에는 극명한 온도 차이가 존재한다.


큰아이의 유치원 친구들과 키즈카페에 갔던 어느 날, 연년생 둘째를 챙기느라 정신없던 나에게 여섯 살 큰아이가 말했다.


“엄마. 지갑 있나 잘 찾아봤어? 핸드폰은?”


미취학 아동 치고 꽤 체계적이었다. 콩을 심었으니 콩 나는 건 자연의 이치. 아들에게서 그 남자의 익숙한 향기가 났다.

keyword
플랫화잍 에세이 분야 크리에이터 직업 에세이스트 프로필
팔로워 8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