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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플랫화잍 May 28. 2023

다시 원점

프라이팬 앞에서는 솔직해져야 한다.

사춘기 시절, 내 아침상에는 하루도 빠지지 않고 달걀부침이 반찬으로 올랐다. 여자아이들이 살찌면 안 된다는 엄마의 뒤이은 당부도 함께. 엄마는 기름 두르지 않은 팬에 매일 아침 달걀을 부쳐주셨다. 노른자를 터뜨려 납작하게 부친 모양의 달걀부침은 딱딱하고, 먹는 재미도 없고, 노른자가 비정형으로 흐트러져 보기에도 썩 좋지 않았다. 난 투정 부리기보다 묵묵히 입안에 밥을 구겨 넣고 집을 나서는 것으로 시위를 했다. 식탁 위 그릇을 너저분하게 남겨두고.


사실 난 서니사이드 업 스타일, 영롱하게 탱글한 노른자 그러니까 젓가락으로 쿡 찌르면 톡 터져 흘러내리는 반숙 상태를 선호한다. 아침을 챙기는 사람이 되고서야 엄마의 납작한 달걀부침은 빨리 익힐 수 있어서라는 걸 깨달았다. 아이들의 아침식사를 챙기며 반찬이 궁할 때, 메뉴 아이디어가 도무지 떠오르지 않을 때, 그럼에도 반찬 가짓수 하나 늘리고 싶을 때, 달걀 프라이를 떠올린다. 어떤 추가 재료가 있는지에 따라 달걀말이, 달걀찜, 스크램블, 오믈렛, 전과 같은 변주도 가능하다. 울 엄만 이런 걸 몰랐겠지. 가뜩이나 아침 입맛 없는 사춘기 청소년이 맛있게 먹었을 리 있나. 친정 엄마는 내가 아침 준비를 할 때마다 소환되곤 했다.


아이들 머릿수만큼 달걀을 부쳐 개인접시에 담아 주던 어느 아침. 잠에서 덜 깬 아이들에게 정성스레 반숙으로 프라이를 해주었다. ‘이거 봐 금방 되는 것을.‘ 또 속으로 중얼거렸다. 데칼코마니 같은 일상이 반복되려는 찰나. 그런데 둘째가 잠에서 덜 깬 목소리로 불쑥 말했다.


”엄마, 저는 노른자를 완전히 익혀주세요. 터뜨려도 돼요. 아니, 터뜨린 게 더 좋아요. “

”너 반숙 좋아하는 거 아니었어? “

”저 그런 말 한 적 없는데.. “


엄마를 향해 풀리지 않던 마음속 서운함을 표현하지 못하고 묻어두었다. 내가 당신의 당부로부터 엇나간 선택을 했던 건 엄마와 다른 존재임을 증명하기 위해서가 아니었을까. 그렇게 당신으로부터 완벽히 독립했다고 자부했을지도. 자기기만이었다. 나는 프라이팬을 앞에 두고 뒤집개를 든 채로 다시 원점에 섰다. 엄마의 웃음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이건 세월이 부리는 장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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