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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플랫화잍 Feb 07. 2023

소월 선생님께.

<나의 집>

당신이 들가로부터 멀어져 멧기슭에 터 잡은 연유는 무엇입니까? 너른 바다로 나아가고자 함인가요. 유유자적 물고기 낚아 한 끼 채우는 하루를 바랐기 때문은 아니던가요? 다시금 큰 길가에서 오가는 사람들을 지켜보는 당신의 뒷모습에 내 마음 철렁 내려앉습니다. 지나는 길손이 행여 그이인가 싶어 어슴푸레한 눈 부비는 모습이 왜 그리 짠한지요.


한참의 시간이 지나 황지우 시인은 문을 열고 들어오는 모든 사람들이 너인듯한 기다림 앞에 문이 닫히고 마는 슬픔을 떨치고 나아갔노라 읊었답니다. 미련을 떨치지 못할 양이면 훌훌 자리를 털고 일어서기라도 할 것이지 무에 할 말이 여태 남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십니까.


어느새 날은 저물고, 시퍼런 새벽이 찾아들더니 희뿌옇게 동이 터옵니다. 당신은 머리 위에 하이얀 서리를 화관처럼 얹고 하염없이 그 자리에 있습니다. 다시는 당신의 마음에 무심한 사랑도, 느닷없는 그리움도 깃들지 않기를 바라봅니다.



<너를 기다리는 동안 >     


황지우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에

내가 미리 가 너를 기다리는 동안

다가오는 모든 발자국은

내 가슴에 쿵쿵거린다

바스락거리는 나뭇잎 하나도 다 내게 온다

기다려 본 적이 있는 사람은 안다

세상에서 기다리는 일처럼 가슴 에리는 일 있을까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 내가 미리 와 있는 이곳에서

문을 열고 들어오는 모든 사람이

너였다가

너였다가, 너일 것이었다가

다시 문이 닫힌다

사랑하는 이여

오지 않는 너를 기다리며

마침내 나는 너에게 간다

아주 먼 데서 나는 너에게 가고

아주 오랜 세월을 다하는 너는 지금 오고 있다

아주 먼 데서 지금은 천천히 오고 있는 너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도 가고 있다

남들이 열고 들어오는 문을 통해

내 가슴에 쿵쿵 거리는 모든 발자국 따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너에게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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