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의 문 앞에 서서.
지난 시간에 썼던 글을 낭독하고 좋은 부분을 나누는 시간. 낭독 전에 선생님들에게 글을 쓰고 나서 달라졌다고 느꼈던 점이 있다면 한 말씀씩 해달라고 부탁드렸다. 오늘은 글방 3기 마지막 날이다. 온라인 프로그램에서도 한 시즌을 마무리하면서 소감을 묻곤 한다. 나를 돌아보게 되었다고, 매번 다른 글감이 쓰려는 마음을 덜 지치게 했고 응원 댓글도 힘이 되었다는 소감이 온라인을 타고 오간다. 엇비슷하면서도 글쓰기에 대한 나름의 정의를 내린 듯한 답변은 다른 글감과 이후 시즌을 준비하는 데 좋은 동력이 되었다.
오늘 글방에서 돌아가며 나눈 소감 역시 예상범주를 벗어나진 않았다. 샘들은 이전과 다른 예민해진 시선을, 나를 정리하며 한번 더 생각하는 시간을 확보겠다는 결심을, 계획적으로 시간을 운용하려는 다짐을 이야기했다. 어느 정도는 예상했던 말인데 목소리로 전해지는 이야기는 가슴 한구석을 찌르르 울렸다. 그래서 이따금 이들의 눈을 바라보기가 힘들었고 시선을 종이 위로 떨구며 다음 순서를 재촉했다.
그저 우리는 글을 썼고 읽었을 뿐이다. 애인의 선물을 받으면 그 안의 사랑을 읽어내듯, 타인의 글에 담긴 진심을 발견했다. 책을 읽고 토론하고 쓰게 된 뒤, 사람들의 표정 너머, 문장 너머를 살피게 된다. 나름의 값진 수확이랄까. 인생의 성찰을 거하게 포장하는 에두른 대화가 진부하게 다가올 때가 있다. 사람들은 그럴싸한 문장 뒤에 숨어 세상을 관조하길 바라니까. 품위를 지키려면 이런 자세가 더 나을지도.
쓰고 싶다는 바람을 이야기한 많은 이들이 글방 신청 링크 앞에서, 책방 유리문 너머에서 주저하는 모습을 보았다. 그들의 탓이라서가 아니라 글을 쓰는 일 자체가 어려워서일 뿐이다. 글이란 숨지 않으려는 사람의 진짜 이야기이므로. 앞으로도 저 골목을 오가는 누군가는 안내문의 모임 공지를 살피고, 유리문 너머 책방의 어른거리는 그림자를 상상하겠지. 일단 문을 들어서면 첫 시간이라는 부담에 골머리는 좀 아플 테지만 챙겨 온 간식을 나누듯 서로의 부담을 쪼갤 수 있다.
밀란 쿤데라는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서 “하나의 사랑이 잊히지 않는 사랑이 되기 위해서는 성 프란체스코의 어깨에 새들이 모여 앉듯 첫 순간부터 여러 우연이 합해져야만 한다”라고 적었다. 당신의 이야기도 그러하다. 하나의 우연이 잊히지 않는 이야기가 되기 위해서는 여러 우연의 문 앞에 서야 한다. ‘선택’의 자유가 주어지는 유일한 순간이니까. 우연을 우연으로 흘러 보낼지, 우연을 필연으로 일구어 낼지는 당신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