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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플랫화잍 Apr 13. 2023

첫 문장은 우유빵처럼

‘신기하게’ 말고 ‘평범하게’

세상에 태어나 처음 내뱉는 문장은 무엇일까요? 이 문장을 적고 문득 궁금해서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내가 처음 했던 말이 뭐냐고요. 봉창 두들기는 소리 한다고 얻어들을 줄 알았어요. 엄마는 제 첫마디를 “우유빵!”으로 기억하고 계시더군요. 어린 시절 내가 가장 즐겨 먹었던 조합이라나.


“그때 카스텔라 하나에 500원이야. 하여간 뭐가 마음에 안 들면 자려고 누웠다가 일어나서 ‘우유빵’을 달래. 500원짜리 카스텔라를 우유에 적셔서 한 숟갈씩 떠먹이면 그게 그렇게 맛있나 보더라고. 하나를 다 먹고 잠들고 그랬지.”


나는 한결같은 사람입니다. 밤에 뭔가를 먹는 버릇은 예나 지금이나 같으니까요. 핸드폰 너머 엄마의 이야기를 듣다가 눈물이 핑 돌았어요. 우유에 촉촉이 적신 카스텔라를 아기에게 떠먹이던 엄마는 당신도 한입 슬쩍 거들 생각을 안 하셨나 봅니다.


소원글방 4기 첫 수업에서 첫 문장을 쓰는 여러 방법을 함께 나누었어요. 집에 돌아가는 길, 유모차에서 옹알대는 아기를 보며 생애 첫 발화와 첫 문장의 상관관계에 대해 생각해 보았고요. 모두 수신자가 또렷했습니다. 내가 쓰려는 글이 ‘일기’라면 다르겠지만 첫 문장은 글쓴이의 ‘의도’를 담고 있습니다. 아기가 내뱉는 ”우유빵!”처럼요. 뭔가를 달라는 요청, 앞으로 내가 할 이야기에 대한 예고, 그러니 시선을 떼지 말고 잘 들어달라는 당부겠지요.


아기도 멋지게 말하고 싶을 거예요. “어머니, 긴 밤 푹 자려면 배를 채워야 할 것 같습니다. 36.5도로 데운 우유 한 컵과 폭신한 카스텔라빵을 먹여 주시겠어요?”라고요. 혹은 “우유와 빵을 씹고, 삼키고, 우물거리면 창자와 내 간, 심장과 콩팥은 무럭무럭 자랄 것 같아요.”처럼 작가 김애란의 <칼자국> 스타일을 담아. 우린 모두 가슴 찌릿하게 감동을 주는 첫 문장을 적고 싶어 합니다만 욕심은 금물입니다. “신기하게 하지 말고 평범하게 하면 된다“(문장강화, p.240)는 작가 이태준의 말을 떠올려봅시다. 때로는 엉뚱해서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들더라도, 가볍게. 한 글자도 적지 못하는 것보다는 낫습니다. 일단 내뱉고 나면 어떻게든 굴러가니까요. 포기하지 않으면 됩니다.


책 읽기 좋고, 작업에 몰두할 수 있는 공간을 찾아가는 건 어때요? 새로운 곳에 들러 누군가를 만나면 전혀 다른 서사가 펼쳐질 수 있거든요. 뭔가를 부지런히 탐색하는 사람만이 ‘내 것’을 찾아갈 수 있습니다. 안목과 선호를 차곡차곡 쌓아보세요. 글로 옮기려는 생각이 진정 내 것인지 집요하게 따져가면서. 할 수 있는 문장부터 감내하다 보면 뭘 채울지 몰라 빈칸으로 남겨둔 자리를 메꿀 수 있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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