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킨 마음 풀어내는 곳
좋은 책은 함께 나누는 자리로 사람들을 이끕니다. 같은 문장을 나누더라도 저마다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방향은 제각각입니다. 꼭 쥐고 놓지 못하는 감정의 부스러기 또한 다단합니다. 그러나 공감하는 문장 앞에서는 서로에게 무장해제되고 맙니다. 응어리진 감정을 직면하고 뒤엉킨 마음을 풀어내지요.
조급한 마음에 성글게 엉킨 실뭉치의 한쪽 끝을 쭉 잡아당기면 곤란합니다. 금세 풀릴 듯했다가 더 단단한 매듭이 되고 말 테니까요. 시간이 좀 걸려도 살살 달래며 실 사이 간격을 벌려야 해요. 실이 지나온 길을 확인하는 게 먼저입니다. 한 권의 책을 나누며 사람들은 당연하다고 무심히 지나쳤던 일을 낯설게 마주합니다. 엉킨 실뭉치를 살살 굴리듯 ‘왜?‘라는 타인의 물음표를 표지석 삼아 한 발짝 나아가지요. 그러니 함께 읽기는 옆사람의 손에 내 손을 기꺼이 포개는 경험과 같습니다.
그 경험이 눈에 보이는 결과물로 차곡차곡 쌓이면 어떨까요? 읽고 글을 쓰며 우리는 내 감각과 사유를 ‘실천’으로 옮기게 됩니다. 잇따른 물음표에 내 목소리로 나만의 해답을 적는 것이랄까. 이런 맥락이라면 꾸준히 많이 써본 사람이 잘 쓰는 건 당연한 말이 됩니다. 꾸준히 쓰는 ‘나‘야말로 가장 좋은 글쓰기 선생님인 셈이지요.
글쓰기는 어렵습니다. 글 한 편을 생산하기란 매 순간 못 쓰는 나, 한 발짝조차 내딛기 어려운 나, 좀처럼 나아지지 않는 나를 견디는 일이니까요. 타인의 글은 ‘정답’ 같고, 내 글은 마치 ‘오답’처럼 느껴지기도 해요. 그러나 다르게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갈수록 글쓰기가 어렵다면, 더 객관적으로 내 글을 바라보게 되었다는 의미가 아닐까요.
처음 쓴 글을 ‘초고’라 부릅니다. 당연히 초고는 성에 안 차고, 틀린 부분이 많습니다. 쓰고, 퇴고하고, 다시 수정하는 과정을 거치며 글은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조금씩 나아갑니다. ‘오래 살아남은 자가 진정 강한 자’라는 진리는 일상에서만 통하는 게 아니라 글쓰기에도 적용되지요. 저는 꾸준히 오래 살아남기 위해 글을 씁니다. 그래서 ‘잘한다’, ‘못한다’라는 평가보다 거듭 시도하는 오늘의 ‘열심’에 스스로 박수를 보내려 합니다.
책을 읽고 글을 쓰며 타인의 세계를 조심스레 넘나듭니다. 정답은 없습니다. 다름을 인정하며 기꺼이 나와 타인에게 손을 포갤 뿐입니다. 당신과 내가 쓴 글이 답이고, 길입니다. 내일의 내가 어떤 모습일지 짐작하기 어렵지만 장담할 수 있어요. 꾸준히 읽고 쓰는 나를 반드시 사랑하게 될 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