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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플랫화잍 May 15. 2023

감동의 실체는

언제나 등 뒤에.

열일곱 고1 체육시간, 선생님은 훤칠한 키에 깔끔한 양복차림으로 새로 왔노라 자신을 소개했다. 선생님의 유머감각에 말솜씨는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시험에 성적에 야간 자율학습으로 달뜨는 마음 꾹 누른 채 숨만 쉬던 시절이었다. 선생님은 성실한 등교 및 야간 자율학습 시간 높은 출석률의 이유였다.


보기 좋게 말아먹은 수능, 대학 자퇴와 재수 그리고 임고로 이어지는 연이은 실패, 힘든 줄 모르고 1주일 26시간을 소화하던 시간강사 첫 해, 학생사고가 터져 학부모와 후덜덜 첫 면담을 해야 했던 기간제 담임 첫날. 선생님은 전화를 걸어 하소연하고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유일한 도피처였다. 좌절의 순간마다 매달리듯 선생님에게 전화를 걸어 술을 얻어마셨다. 그러고 나면 숨이 쉬어졌다. 다시 내일을 살아낼 수 있었고.


몇 년 안 되는 교사경력이 끊기고, 육아와 살림에 재미 붙이려 애쓰다가 다시 책을 만나 분주할 수 있었던 행운의 여정에도 선생님이 계셨다. 강사가 되기 전 아니 강사가 되려는 결심을 하기도 전에 선생님은 아이들 앞에 다시 설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주셨다.


“그냥 너 관심 있는 걸 아이들한테 말해. 그거면 돼. “


‘너 관심 있는 거’, ‘너 잘할 수 있는 거’라는 말 앞에서 몇 번이고 넘어졌다가 다시 일어섰다. 선생님을 만나고 돌아오는 길엔 언제나 스스로 물었다. 나도 당신 같은 어른이 될 수 있을까? 우리는 누군가가 내미는 손으로 내 존재를 인식하고 또 다른 이의 손을 이어 잡게 된다. 내 선생님을 만나고 나면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


소설 <경청>(민음사, 김혜진) 속 해수는 일직선으로 자리한 탓에 마치 한 그루로 보였던 은행나무를 본다. 그녀가 수시로 시선을 빼앗겼던 ’ 푸르름‘의 실체란 실은 뒤쪽에 자리한 나무 덕분이었다. 그녀처럼 나 역시 선생님의 ”다른 모든 것에 기대어 있으”며 안온했다.


교사가 하는 모든 말과 행동이 빌미가 되고, 흠이 되는 요즘이다. 사람들의 말은 교사들이 무심히 지내온 시간을 상기하라는 당부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난 아직 선생님의 말이 듣고 싶어서 곁을 맴돈다. 누군가에게 말하기만 해도, 어딘가에 말할 곳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세상은 살 만하니까.


선생님은 올해 2월 명예퇴직 이후 멀리 내려가 계신다. 오랜만에 서울에 오셔서 점심을 같이 먹었다. 그날 볕이 참 좋았는데 선생님은 익살스레 선글라스 자랑을 하시더니 명퇴기념 텀블러와 꽃병을 담은 에코백을 쓱 내미셨다. 아마 나는 퍽 서운하고 속상해서 복잡한 표정을 짓고 있었겠다.


“나는 늘 너한테 감동을 주는 사람이잖아.”


피식 웃었다. 맞아요. 샘, 늘 그러셨어요.

언제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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