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플랫화잍 Aug 05. 2023

12. 당장의 행복과 안위를 보살피기

어차피 흔들리며 나아갈 테니.

삶을 사랑하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다. 독서, 글쓰기, 달리기, 맛집탐방, 여행 등, 자신의 삶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각자의 노하우나 방법을 하나씩 가꾸며 산다. 삶을 사랑하기 위한 나만의 방법을 잘 가꾸는 이는 아마 무미건조한 삶에 걸려 넘어져본 적이 있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매일 눈뜰 때마다 내 앞에 주어지는 스물네 시간이 거저 주어지는 게 아님을 아는 이라면 말이다.


저런 방법들이 오직 자기만을 위하는 개인적 차원의 행동에 불과하지 않느냐는 물음도 있다. 행복한 인생이란 결국 나의 행복과 안위라는 대전제를 만족시키고서야 그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게 아닐까. 자기 이익추구라는 커다란 틀 안에서 타인에 대한 배려를 한 스푼 첨가할 때, 아마 삶이란 보다 커다란 의미로 확대될 수 있는 것이다.


좋아하는 이에게는 서슴없이 애정 표현을 하고, 오래 보고 싶은 이들과 20-30년의 꾸준한 인연을 유지하는 내게 ‘저마다의 영역’을 가꾸는 이들은 좋은 삶의 본보기이자 배움의 대상이다. 이런 맥락이라면 우리가 일상을 꾸리는 일의 거의 모든 부분이 타인을 향한다고도 볼 수 있다. 허나 매 순간 자기에게 집중하며 타인에게서 어떤 영향도 받지 않노라 자신하는 사람들을 볼 때 의구심이 든다. 그들은 상대를 낮춰가며 자신을 높이고, 보란 듯 내 삶이 최고라 자부하곤 한다. 더 나아가 드러나지 않는 듯 드러나게 그들에게 동조하는 나를 보며 ‘환멸’이라는 단어가 형체를 갖춘다면 이리도 시커멓고 불퉁한 형태였으려니 생각한다.


신영복 선생님의 서예 작품에 소개된 고 민영규 교수의 ‘흔들리며 북극을 가리키는 떨리는 지남철’의 말에서 알 수 있듯, 흔들리지 않고 정지한 나침반의 바늘은 고장 난 것이므로. 삶의 과정이란 꿋꿋하게 맞서 버티는 방법을 익힌다기보다 쉼 없이 흔들리며 이리저리 누웠다가 날이 새면 일어나는 법을 터득하는 것에 가깝다. 그나마 그들과 일로 만나는 사이라는 사실을 다행이라 여겨야 한다. 그들과 내 영역이 겹치는 건 오직 일을 할 때니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을 잘 갈라치기 하면 된다는 거. 능력치 레벨업이란, 그리고 비가 그치자마자 다시 일어서는 법을 터득하기란 이런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토론을 준비하며 장대익 교수의 <공감의 반경>을 재독 했다. 그는 예스맨, 가신(家臣)이 버글대는 이른바 ‘폐쇄집단’의 좁고 깊은 공감은 ”성향이 유사한 사람들 사이에서 지나치게 편향된 공감만 이루어질 개연성이 높다“고 적었다. 그러니 ”타인의 영향에 민감한 존재요, 타자의 추천에 마음이 동하는 존재라는 사실은 부끄러운 비밀이 아니“(p.106)라며. 더 나아가 그는 무엇보다 우리 사회에서의 공감의 구심력보다 원심력을, 공감의 반경을 넓히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공적인 마음이 앞서며 세상의 속도에 발맞춰 나아간다는 생각이 들 때면 뿌듯하다가도, 개인적 영역의 마음이 교차하며 언제까지, 얼마나 앞서간 이의 뒤꽁무니를 밟아야 하는가에 생각이 미치면 그간의 삶이 꽤 불행하게도 여겨진다. 바로 지금이 잘 가꿔둔 나만의 노하우와 방법에 잠시 머무를 때다. 멀리 나아가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당장은 손을 뻗으면 닿을 곳에 있는 행복과 안위를 보살피는 머무름도 필요하다. 결국 내게는 독서와 글쓰기, 여행으로 모아지겠지만, 이리저리 흩어진 ‘나’를 잊어가기 전에 방향타를 조정하는 기준이 되겠지. 그렇게 흔들리며 조금씩 나아간다.

매거진의 이전글 11. 한방의 순간은 다시 찾아온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