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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플랫화잍 Jan 08. 2024

아프니까 방학이다

 12월 말, 초등학교에 다니는 막내 아이의 방학을 시작으로 중학생인 큰아이 둘도 각각 방학과 졸업을 맞았다. 주위 친구들이 하루가 멀다고 코로나와 독감으로 결석을 해댈 무렵에도 말짱하던 아이들이 차례차례 독감, 코감기, 인후염, 차례차례 요양 모드에 들어갔다. 크리스마스며 새해 첫날은 집이 아닌 다른 곳에서 맞이하곤 했는데 서운함도 잠시, 일주일을 넘어가니 온 집안이 혼돈 그 자체였다. 나는 마지막 날까지도 아이들 곁에서 있어주지 못했다. 온전히 남편 차지가 된 이번 병치레로 난 이리저리 눈치 살피며 더 기민하게 움직이는 입장이 되었다. 차라리 일없이 아이들 옆에 붙어있던 날이 속은 편했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식구들이 모두 잠든 늦은 밤, ‘방학을 하면’이라는 가정으로 시작했던 많은 문장을 떠올렸다. 방학만 하면 늘어지게 자야지, 방학하면 아이들이랑 여행을 가야지, 방학엔 책들을 정리해야지, 밀린 영화랑 드라마를 봐야지, 멍하니 시간을 소비해야지. 그도 잠시, 하고 싶은 일과 처리할 일이 번갈아 머릿속을 들고 났다. 시선이 머무는 식탁 위에는 약봉지가 한가득, 유산균과 각종 영양제, 미처 읽지 못한 가정 통신문과 아이 성적표까지 검토하고 처리할 더미가 탑이 되어 쌓였다. 지난해보다 더 바빴고, 많은 일을 벌였으니 당연하다며 맥없이 마른 세수를 했다.     


 사실 내게 공식적으로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 멍하니 텔레비전을 보며 흘려보내는 시간은 달콤하면서도 미묘하게 고통스럽다. 게으름이나 무기력 속에서도 불안과 초조는 늘 깃들여 있으니까. 그런데 따져보면 그런 시간도 길진 않았다. 모든 식구가 잠자리에 들고 나서야 비로소 허락되는 시간이니까. 주어진 시간 대비 내 주머니는 턱없이 얇았고, 난 ‘살림 잘하는 주부’이고 싶었다. 아이의 옷이나 기저귀, 그림책과 장난감을 검색·주문하는 건 알뜰한 주부가 되기 위한 기본 조건이었다. 그러나 합리적인 소비는 그만큼의 품이 들었다.      


 뭔가를 해야 한다는 강박은 아침부터 밤까지 할 일 목록을 빼곡하게 채우게 만들었다. 빈 시간은 운동으로 메꿨다. 쉬고 있으나 쉬어가는 방법을 잘 모르니, 여유라도 생기면 스마트폰 속 같은 앱을 반복해 새로고침 할 뿐이었다. 학창 시절부터 이어져 온 크고 작은 미션을 수행하느라 쉼에 대한 공포가 학습된 건 아닌지 스스로 묻기도 했다. 아기와 내버려진 무수한 낮과 밤, 아이들의 계획 사이로 쪼개지던 내 시간, 오직 누군가를 먹이고 입히고 씻기고 재우고서야 끝나는 일상의 탓인가. 바쁨이 지나가고 난 뒤의 공허감과 막막함을 견디기 어려웠을까 자기 연민도 해보면서.


 여전히 먼지, 빨래, 설거지는 또 쌓이고, 다시 쌓인다. 구입한 책, 대출한 책들도 책상 위, 방바닥, 책꽂이에서 정리의 손길만을 기다린다. 아이들이 어린이집, 유치원엘 다녔을 때라면 더 정신없었겠지. 덧없이 틱톡대는 초침이 안타까웠으리라. 달라진 점이 있다면 이젠 바쁨의 한가운데에서 잠시 물러날 줄도 알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음악부터 틀고 느릿느릿 원두를 갈아 커피를 내리는 잠깐의 멈춤. 이 바쁨에서 저 바쁨으로 갈아타기 위한 나만의 의식이다. ‘늘 꾸준한 열심’은 나를 금세 지치게 했다. 깜냥 안 되는 ‘늘’ 혹은 ‘열심’의 문제였는지 따지려는 생각을 잠시 접어둔다. 조바심 내고 열정을 불태우는 것만으로는 긴 호흡을 유지하기 힘들다는 사실을 조금씩 깨우쳐간다.     


 한 주의 열정을 불태운 ‘우리’를 위로하기 위한 가족만의 의식도 있다. 배달 음식과 맥주, 콜라로 마무리는 금요일 저녁은 과장된 몸짓과 한 톤 높은 목소리로 재잘거리는 아이들과 눈맞춤 하는 시간이다. 여간해서는 보지 않는 예능 프로그램을 함께 보며 왁자지껄 웃는다. 함께 남용하는 시간이 주는 위안이다. 예상했던 일이든, 예상하지 못한 일이든 함께 하는 일의 끝에 ‘즐거움’을 달면 그만일 테다. 할 일을 해낸 즐거움, 무엇도 하지 않을 즐거움, 열정을 불태우는 즐거움처럼. 즐거움이 널려있는데 더 무엇이 필요한가. 물론 인생에는 돈, 인정, 성취와 같은 것들이 필요하다. 큰 노력 없이 모든 바람이 이루어졌으면 하는 게 사람이다. 하지만 이런 생각을 반복하다 보면 바라는 것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뿐이고, 그와 같은 속도로 난 불행해지지 않을까. 소시민의 소소한 욕심이라 해도 욕심은 바닷물과 같아서 마실수록 목만 탈 뿐이니 말이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고 나니 퍼뜩 내 목이 간질간질, 마른기침이 나더니 콧물이 주룩 흐른다. 계획대로 되지 않는 인생사의 즐거움이 예고 없이 찾아든 순간이다.


아프니까 방학이다.

책방에서 2024 첫 글쓰기 모임을 준비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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