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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플랫화잍 Oct 17. 2023

버틸 수 있는 일희일비

글쓰기의 쓸모란

읽고 쓰는 것만으로 삶이 나아질까? 3년째 이어지는 온라인 글쓰기 모임에서 종종 던지는 글감이다. 매 순간 스스로 되묻는 질문이기도 하다. 과거에는 쏟아부은 노력만큼 그 결과가 따라줄 것이라는 절대적인 믿음이 있었다. '무한 긍정‘ 혹은 ’자기 과신‘ 같은 믿음 아래 나를 다그쳤던 때가 있었다. 그런 노력이 가시적인 성과로 드러나기도 했다. 하지만 '그게 진정 나를 위한 삶이었나?'라며 뒤돌아보면 썩 탐탁지 않았다. 과도한 욕심이었다.


어떤 일은 쉽게 풀리기도 하지만, 어떤 일은 죽을 만큼 노력해도 엉키기만 하는 게 인생이다. 요즘 나는 복잡다단한 삶의 와중에도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구분하려고 노력한다.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고, 할 수 없는 것은 단념한다. 삶을 단순하게 만들기 위함이다. 한계를 인정하는 삶, 내 숨의 끝을 가늠하는 삶. 눈앞에 주어진 일에 감사하며 최선을 다해 살면 그만이다. 보다 자유로운 삶도 그 어딘가에 있겠지.


그런 와중에도 포기하고 싶지만, 포기할 수 없는 일, 바로 쓰는 일이다. 칼을 벼리듯, 바늘 끝을 날카롭게 갈듯, 늘 뭔가를 쓰기 위해 골똘히 고민한다. 고민을 실행으로 옮기기란 아침에 머리를 감으러 욕실로 향하는 발걸음만큼 더디기만 하다. 이 굴레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그냥 가볍게 쓰기'가 필요하다. 모임의 강제성이나 글쓰기 메이트의 도움을 빌리는 것도 나쁘지 않다. 주제를 읽고, 글감을 떠올리며 30분 정도 그냥 가볍게 쓸 수 있는 동기를 확보할 수 있다면. 매일의 짤막함이 쌓여 어떻게든 쓰게 된다.

이번주부터 새로이 수업을 시작하는 글을 쓰는 분들께 왜 글을 쓰려하는지 첫 질문을 던졌다. 한 글자 한 문장 읽고 끼적이기가 어려운 요즘이므로. 독서와 글쓰기의 방해자는 도난당한 집중력이 아니라 좋은 날씨, 가족과 즐기는 단란함이나 추억 같은 것들 인지도 모른다. 지난 3년은 당연하게 여겼던 것들이 얼마나 소중한지 뼈아프게 느꼈던 기간이었으니까.


그러므로 꾸준히 읽고 쓰려면 막강한 '강제성'이 필요하다. 이마저도 없으면 자꾸 뒤로 미루게 되는 것이 글쓰기의 속성이다. 마감의 압박도 없고, 원고료를 받는 것도 아니며, 한주 미뤘다고 해서 비난을 받거나, 썼다고 해서 상을 주지도 않는다. 결국, 글쓰기는 온전히 의지의 문제가 된다. 쓰던, 미루던, 미루다 쓰던 스스로 결정할 일이다. 시간을 끌수록 미루게 되고 이런 상황이 반복되며 글쓰기는 부담으로 다가온다.


늘 쓰는 근육만 쓰면 몸이 아플 일은 없다. 같은 이야기를 다루기보다 지난 어려움과 선택의 순간을 글로 옮기며 다채로운 감정의 근육을 건드려본다. 뻐근한 통증 너머 단단한 근육을 상상하면서 말이다. 글쓰기의 쓸모란 익숙하지 않은 방향으로 근육을 늘리고 줄이는 일, 내 숨의 길이를 가늠하며 버티는 힘을 길러주는 데 있다.


언제까지 쓰는 자리에서 버틸 수 있을까. 미지수다. 누군가 먼 미래보다 가까운 미래의 예측이 어렵다고 했듯, 책방의 내일도, 도서관의 내년도 불투명한 요즘이다. 가능하면 오래 한자리에서 함께 머무르고 싶지만, 매일의 기다림, 시간의 공백 속에 간절한 마음은 종종 희미해지곤 한다. 이런 마음씀도 삶을 단단하게 만드는 과정인 걸까? 오늘 하루도 저물었다. 일희일희까지는 바라지 않는다. 버틸 수 있는 만큼의 일희일비로 애쓸 여지가 있는 내일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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