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일상다담

젖가슴 수난사(1)

by 플랫화잍

임신과 함께 내 젖가슴에는 제2의 역사가 펼쳐졌다. 그전까지 내 가슴은 단지 여성성의 상징일 뿐이었다. 임신 이후, 철분제와 산전 교육을 받으러 간 보건소에는 ‘모유는 엄마가 아기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라는 문구가 크게 적혀 있었다. 산부인과 대기실에는 분유 한 통 가격을 기준으로 모유 수유가 얼마나 경제적인지 환산해 둔 포스터가 걸려 있었다. 이는 모유 수유가 아이를 위한 최선일뿐 아니라, 가계 경제를 지키는 당연한 결정처럼 다가왔다. 예정일에 가까워지니 가슴이 더 팽팽해졌다. 샤워하며 젖꼭지를 짜보면 노르스름한 뭔가가 흘러나왔다. 내 가슴은 마음의 준비 여부와 상관없이 ‘젖’이 될 준비를 마친 셈이다.

출산 시 예상치 못했던 다량 출혈로 회복실에 올라가지 못한 채 오래 분만실에 누워있었다. 때는 초복을 앞둔 2008년 7월, 더웠다. 양가 어머니들은 산후풍이 온다며 회복실에 에어컨을 틀지 말라 신신당부를 했다. 씻지 못해 땀에 절여진 내 얼굴은 온통 혈관이 터져 얼룩덜룩했다. 밀가루 포대 같은 산모복 안의 몸은 손가락 끝부터 발가락 끝까지 퉁퉁 부어있었다. 아기를 안아보지 못한 채 여덟 시간이 지난 한밤중, 신생아실로부터 수유콜이 왔다. “엄마, 수유하실 수 있겠어요? 수유하러 오세요.” 세상에서 가장 못생긴 모습으로 아기와 첫 대면을 했다. 처음 만난 아기도 나처럼 퉁퉁 부어있었다.


신생아실 간호사는 내 품에 아기를 안겨주고, 익숙하게 내 산모복 단추를 풀더니 젖꼭지를 잡아 아기 입에 갖다 댔다. 사전 양해도 없이 가장 은밀한 곳을 잡아 비틀다니. 충격에서 벗어날 새도 없이 아기가 젖을 물었다. 그런데 아기는 이내 내 젖꼭지를 뱉었고 울기 시작했다. “엄마가 분만실에 오래 있어서 아기가 배고플까 봐 신생아실에서 분유 수유를 먼저 시작했어요. 그랬더니 양껏 모유가 입에 안 들어간다고 그러나 봐요. 오늘은 늦었으니까 이 정도로 연습했다 셈 치고 올라가서 주무세요. 새벽에 다시 콜 할게요.”

다음날 다시 수유실, 밤새 머릿속으로 수없이 시뮬레이션했던 자세로 아기를 받아 들었고, 젖을 물렸다. “웩!” 아기는 오만상을 찌푸리며 구역질과 함께 내 젖꼭지를 뱉었다. 심란한 내 마음과 달리 옆에 앉은 산모들은 각자의 아기와 평화로웠다. 그동안 임신‧출산 책을 읽으며 각인된 ‘젖을 먹여야 엄마’라는 사회적 기대가 장벽처럼 다가왔다. “지금은 아기가 황달기가 있어서 잘 먹여야 하니까 일단 분유를 줄게요. 엄마가 하려는 의지만 있으면 금세 완모할 수 있어요.” 격려인지 강요인지 모를 간호사의 위로를 들으며 나는 조리원으로 향했다.

산모들이 가득한 조리원의 분위기는 수유에 대한 열기로 더 뜨거웠다. 경쟁하듯 젖을 짜서 신생아실로 보내던 산모들 가운데에서 나도 고군분투했다. 조리 기간 내내 아기는 젖가슴을 거부했고, 설상가상 젖이 잘 돌았다. “이렇게 잘 먹는 애를 굶길 거야? 애랑 싸울 거야? 젖도 잘 나오면서?” 조리원 원장이 말했다. 유축하며 젖을 먹이기로 타협했다. 하루 여섯 번에서 여덟 번, 젖가슴을 부여잡고 씨름했다. 플라스틱 유축기에 쓸려 가슴 피부가 얇게 벗겨졌다가 딱지가 앉기를 여러 번 반복했다. 퇴원 후 집에 돌아와 아기를 못 재운 어떤 밤에는 더 유축한 젖이 없어서 한밤중에 편의점으로 분유를 찾아 헤맸다. 직접 수유를 시도하려다가 차오르는 젖을 제때 먹이지 못해서 젖가슴이 돌처럼 굳곤 했다. 마사지사는 젖이 잘 나오라고 먹는 고칼로리 산모 영양식이 문제라 했다. 젖이 뭉쳐서 가슴이 단단히 굳으면 온몸에 열이 났고, 건드리기만 해도 비명이 나왔다. 그럼에도 젖 뭉침이라는 고통 앞에서는 기꺼이 상반신을 벗고 가슴 마사지를 해달라 눕게 되었다. 아파서 눈물을 질금대며 고무공을 비틀듯 힘껏 뭉친 젖을 짜내는 마사지사의 머리카락을 잡아 뜯는 상상을 했다.

그런 내게 시댁 형님은 아기를 며칠 굶기라 했다. “굶으면 다 먹게 되어 있어. 언제까지 젖병 씻어가며 유축해 먹이려고 그래.” 친정엄마는 매 끼니 거대한 들통에 각종 미역국과 돼지다리를 고아낸 국을 끓였다. “그래도 먹어. 엄마가 먹어야 젖이 나오지.” 시어머니는 유축한 모유를 아기에게 먹이며 어르듯 말했다. “뭐 이렇게 유별나게 먹냐.” 젖이 차오르는 가슴이 무거워서 우울했고, 가장 저렴한 앤젤 젖꼭지는 맛나게 빨아대면서 내 젖꼭지는 거부하는 아기에게 화가 났다. 한여름 김이 펄펄 올라오는 미역국이 지겨워 울었다. 꾸역꾸역 유축기로 젖을 짜내는 내 모습과 착유기를 꽂고 되새김질하는 젖소의 모습이 오버랩되었다. 수유를 하면 산후 스트레스가 조절되고 우울증이 예방되며, 자궁 수축을 돕는 옥시토신이 분비되어 회복이 빨라진다던데, 적어도 이건 내게 해당하는 말은 아니었다.

한 논문에 따르면 생후 3개월 아기의 완전 모유 수유율은 2009년 57%에서 2020년 13.1%로 뚝 떨어졌다. 이유로는 모유량 부족(46.9%), 직장 복귀(38%), 신체적, 정신적 피로(36.6%), 수유 방법에 대한 지식 부족(20.8%), 건강 문제(18.4%)를 들었다. 나 역시 통계 속 한 점이었다. 여러 원인이 데이터로 설명되지만, 육아서에서 강조하는 모유 수유에 대한 ‘엄마의 의지’는 여러 이유를 묵살하며 나를 압박했다.


이듬해 둘째가 생겼고, 수유에 대해 조금 더 주체적인 선택을 해보기로 했다. 먼저 주변의 말에 귀를 닫았다. 모유와 분유를 병행하는 타협점을 찾기로 했다. 연년생 아이 둘을 키워야 하는 나를 위한 최선이었다. 주변 어른들은 내가 분유를 먹이겠다고 했을 때 서운한 눈빛을 보냈다. 그럴 때면 분유를 먹이기로 한 내가 잘못을 저지른 기분이 들었다. 엄마가 되고, 내 몸에 대한 결정권이 정말 내게 있는지 물었던 건 괜한 의심이 아니었다. 첫아이가 열여덟 살이 된 지금도 상황은 그리 달라지지 않았다. 사회 내 돌봄과 가사 노동은 몇 년 사이 급격히 외주화 되는 중이지만, ‘엄마’의 돌봄과 가사 노동은 재화로 환산되지 않는다. “집에서 애나 키우지.”라는 말은 여전히 모욕으로 통한다. 둘째 아이와 함께 시작된 젖가슴 수난사, 두 번째 이야기는 조금 다른 양상으로 흘러갔다. 그리고 열여덟 해가 지난 지금에서야 나는 내 몸과 선택에 대한 이야기를 정리할 수 있게 되었다.


-계속-


*참고 논문: 박정숙, 오은주, 권영은 <3개월 이내 초산모의 모유수유 중단 경험>, 경북간호 과학지,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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