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저녁을 먹고 반포 한강대교에서 친구와 두 시간 즈음 걸었던 것 같다.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다 자연스럽게 대화의 흐름이 끊겼고, 어느 순간 조용한 침묵이 우리 사이를 채웠다.
적막이 흐른 지 30분쯤 되었을까. 그제야 우리는 꽤 오랫동안 말을 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굳이 무언가를 말해야 한다는 부담 없이, 침묵의 상태가 유지되어도 우리는 서로를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서로가 편하며, 잘 이해하고 있는 상태인 것이다.
보통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 긴장하게 되고, 익숙한 지인을 만날 때보다 에너지를 훨씬 더 많이 쓰게 된다.
성인이 되어 만나는 사람들 중에는 점점 더 이해관계가 얽힌 경우가 많아지는 것도 당연한 일인 것 같다.
우리는 그런 만남에 대해 서로 피로감을 느낀다고 이야기했다. 그렇다고 해서 살아가며 만남을 피할 수는 없는 일이다.
사람마다 성격이 다르기에 '정답'은 없지만, 나는 공동체 안에서의 시간도, 홀로 있는 시간도 모두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홀로 있는 시간은 나를 돌아보게 하고, 나를 조금 더 ‘나답게’ 만들어 준다.
때로는 정처 없이 시간을 흘려보내는 것보다 삶에 대해 깊이 생각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그리고 공동체는 삶에서 중요한 가치들을 몸소 실천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 '사랑', '나눔', '연대', '공감', '기쁨의 확장' 등등.
한 인간이 삶을 살아가며 혼자서 만들어내지 못하는 가치들을 공동체를 통해 만들어내며 '살아있음'을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보통 이런 주제에 대한 생각은 철학적인 생각과 많이 연결된다.
고등학교 시절, 나는 사회탐구 과목으로 ‘윤리와 사상’과 ‘생활과 윤리’를 선택했다. 많은 문과 학생들이 흔히 선택하는 조합이다.
이때 철학자들과 그들의 사상을 처음 접하게 되었는데, 흥미롭고 재밌게 느껴졌다. (물론 공부로 만난 것이니 그들의 말이 피부에 와닿지는 않았지만.) 아니, 정확히 말하면 선생님이 좋아서 그 수업을 더 열심히 들었던 것일 수도 있다.
쓰다 보니 잠시 딴 길로 새보자면,
학창 시절 나는 윤리 선생님을 존경하며 좋아했다. 아버지뻘이었다. 여고 다니면 좋아하는 선생님이 꼭 한 명씩 있다. 항상 '은비양'이라고 불러주셨는데 그 목소리가 따뜻하게 기억난다. 아주 젠틀하셨다.
한 번은 내가 독일에 있을 때, 선생님께 연락이 왔다. '은비양, 독일에서 잘 지내요?'.
나는 선생님을 꼭 뵙고 싶다고, 한국에 돌아가면 찾아뵙겠다고 답장을 드렸다. 하지만 몇 달 후, 선생님의 부고 소식을 듣게 되었다.
그 문자를 보냈을 당시, 선생님은 이미 암 투병 중이셨고, 본인에게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걸 알고 계셔서 생각이 난 제자에게 연락을 하신 것이다.
장례식에 가지 못한 게 너무 죄송스럽다.
독일 가기 전 나에게 짬뽕과 탕수육을 사주시며, 독일에 왜 철학자가 많은지 재미있게 설명해 주시던 그런 따뜻한 선생님이었다.
뵙고 싶다.
다시 돌아가
얼마 전, 아는 동생과 대화하다가 윤리시간에 배운 철학자 이야기가 나왔다.
‘아는 것이 힘이다(Knowledge is power)’라는 말로 유명한 프랜시스 베이컨(Francis Bacon).
베이컨을 시작점으로, ‘인식(지식)’의 출처를 다룬 철학의 중요한 흐름인 합리론, 경험론, 관념론이 궁금해져 다시 한번 살펴보았다.
이 내용은 고등학교 '윤리와 사상' 과목의 근대 철학 단원에서, 합리론과 경험론의 비교 파트로 등장한다.
베이컨은 경험론 철학자로, 로크·흄과 함께 소개된다. 이들은 감각 경험을 통해 진리를 탐구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선천적 이성보다는 후천적 감각과 경험을 중시했다. 과학적 방법(귀납법)을 통해 인간의 삶을 개선할 수 있다고 믿었다.
베이컨의 명언들
“Reading maketh a full man; conference a ready man; and writing an exact man.”
독서는 사람을 충실하게 만들고, 대화는 민첩하게 만들며, 글쓰기는 정확하게 만든다.
“A wise man will make more opportunities than he finds.”
지혜로운 사람은 기회를 찾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낸다.
“Hope is a good breakfast, but it is a bad supper.”
희망은 훌륭한 아침이지만, 나쁜 저녁이다.
“The job of the artist is always to deepen the mystery.”
예술가의 임무는 언제나 신비를 더 깊게 만드는 것이다.
“In order for the light to shine so brightly, the darkness must be present.”
빛이 찬란하게 빛나기 위해선, 어둠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반면,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로 유명한 데카르트는 합리론의 대표자였다. 이성과 논리를 통해 진리에 도달할 수 있다고 믿은 철학자이다.
그리고 이 둘을 종합하려 한 인물이 칸트였다. 칸트는 관념론을 주장하며, 이렇게 말했다.
“개념(이성) 없는 직관(감각)은 맹목적이고, 직관 없는 개념은 공허하다.” 결국 인식은 이성과 감각의 종합이라는 것이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칸트는 '선험적 관념론'을 주장했다. 선험적이란, 경험보다 먼저 주어진 인식의 틀이다.
- 관념론: “세상은 내 마음속 관념이다.”
- 선험적 관념론: “세상은 존재하지만, 나는 내 인식의 안경(선험적 구조)을 쓰고 그것을 본다.”
그런데 칸트의 주장에 따르면 그 '인식'은 '이성' + '감각'이 짬뽕된 것이다.
그래서 인식은 이성과 감각이 함께 작용해 만들어지며, 우리는 그 인식을 통해 마치 ‘안경’을 쓴 것처럼 현상을 바라보게 된다.
다시 말해, 우리가 보는 ‘세상’은 이성과 감각이 구성한 인식의 결과물이다.
생각해 보니 안경보다는 선글라스로 비유하는 것이 나을 것 같다. 안경은 투명하지만 선글라스는 색이 들어가니까.
그래서 우리는 모두 각자의 선글라스를 가지고 있다.
70억 인구가 각기 다른 선글라스를 쓰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홀로 있는 시간과 함께하는 시간을 오가며 살아가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칸트의 사상에 힘을 싣고 싶다. 나는 한쪽으로 치우치기보다는 조화롭게 중심을 잡는 태도를 선호하며,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는 평화로운 관계와 삶의 방식을 지향한다.
어느 하나 소중하지 않은 사람이 없으며, 세상의 자리에서 각자 맡은 역할이 있다고 생각한다.
모두 다 특별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이런 선글라스를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