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화가 잘 나지 않는다. 아니, 화를 낼 일이 잘 없다. 애초에 그런 일이 생길 것 같으면 그냥 자리를 피한다.
그런데 어제, 화가 났다.
피할 수도 없었던 아주 찰나의 일이었다.
밤에 런닝을 하려고 공원에 나갔다. 한 바퀴 걷고, 시작점 근처에서 이제 막 뛰려고 마음속 준비를 하고 있는데 바로 옆으로 전동 킥보드가 쌩 - 하고 지나갔다. 정말로 '쌩' 소리가 들렸다.
그 순간 내가 팔이라도 뻗었으면, 아니 팔꿈치만 조금 구부렸어도, 사고였다.
킥보드 각도가 조금만 내 쪽으로 기울었어도, 사고였다.
큰일이 날 뻔했다.
나는 너무 놀라 반사적으로 “아아아악! 깜짝이야!” 하고 소리를 질렀고, 다리에 힘이 순간적으로 풀렸다.
넋이 나간 채로 킥보드를 쳐다봤다.
두 명의 키 큰 남자가 하나의 킥보드를 타고 있었고, 내 비명 소리를 듣고는 “하하하” 웃으며 사라졌다.
... 빡이 쳤다. 이 표현이 감정을 가장 잘 설명해 주는 것 같다.
이유는 두 가지.
1. 전동 킥보드는 원래 한 명이 타야 하는데, 두 명이 타고 있었다. → 명백한 위법행위다.
2. 넓디넓은 공원에서 굳이 사람이 있는 쪽으로 붙어서 지나갔어야 했나.
2번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1번은 그냥 ‘아휴, 왜 저래...’ 하고 넘겼을 일이다. 하지만 2번 때문에 나는 순간 ‘신고할까’까지 생각이 미쳤다.
본인에게 닥친 일에는 누구나 더 민감하다.
차림새나 말투로 봤을 땐 고등학생 같았다.
나는 일단 마음을 추스르고 런닝을 시작했다.
... 그런데 달리면서 계속 화가 났다. 사과는커녕 웃다니.
두 바퀴째.
공원에 갈래길이 있는데, 그 옆길에서 그들이 다시 나타났다. 킥보드를 탄 채 내가 달리는 길로 합류하고 있었다. 모습을 보니 학생들이 확실하다.
나는 말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멈추라 해도 멈출 것 같진 않아, 들리게 목청껏 말했다.
“저기요, 킥보드에 두 명 타면 안 되는 거 몰라요?”
더 말하고 싶었다.
“속도도 줄이지 않고 사람 옆을 지나가면 어떡하냐 사고 날 뻔했다.”
하지만 너무 찰나여서 그 말까진 못 했다.
그런데 더 화가 났던 건, 내 말에 킥보드를 멈추지 않고 계속 타면서 “몰라요~ ㅋㅋㅋ”라고 둘 다 장난스럽고 걸걸한 목소리로 동시에 내뱉고는 휙 가버리는 게 아닌가.
(리액션을 보니, 나는 화가 나서 말했지만, 듣는 사람 입장에선 그렇게 화가 난 목소리로는 안 들렸던 것 같다.)
나는 그 소리를 듣고 ‘한 번 더 마주치면 진짜 멈춰 세운다’고 마음먹었다.
하지만 그들은 더 이상 공원에서 보이지 않았다.
친구한테 씩씩대며 말했더니, “진짜 왜 저래?” 하며 맞장구를 쳐 줬다.
내가 울컥해서,
“쟤네들 나이를 X구멍으로 먹었나 봐. 다시 내뱉게 하던가, 어우 진짜.”
친구는 내가 화내는 모습이 웃겼는지,
“ㅋㅋㅋㅋㅋ 근데... 나이를 어떻게 X구멍으로 먹고 다시 내뱉어 ㅋㅋㅋㅋ”
“야, 너 지금 그걸 꼭 따져야.....ㅋㅋㅋ 아이 참...ㅋㅋㅋ 나 화났는데 왜 웃기냐....”
이 와중에 사실관계를 따지는 친구가 어이없어서, 나도 모르게 헛웃음이 났다.
그래도 웃으니 기분은 조금 풀렸다.
한 바퀴 더 뛰었더니, 가슴과 배가 아파온다.
PMS다.
확실하다.
그래서 내가 화가 더 많이 났나 싶다가도, 아니,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상식 밖의 행동이었고, 화가 나는 게 당연하다는 생각을 했다.
갑자기 몸이 힘들어져 멈출까 했지만 계획한 곳까지는 끝까지 뛰었다.
집에 돌아와 음악 들으며 샤워를 하니 콧노래가 나온다.
아까 그 화난 사람 맞나 싶을 정도로...(;;;)
아무쪼록 그 학생들, 앞으로 사고 나지 않길 바랄 수 밖엔 없다.
바르게 성장하길 바랄 수 밖엔 없다.
이게 내가 화를 다스리는 방법..
방법이라기보다 흘려보내야지,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