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은 마법 같은 공간이다
놀랍도록 내가 나를 발견해 가는 곳이기도 하다.
가끔은, '이러다 내 모든 정보가 다 나오는 거 아닌가?' 생각한다.
과거의 나, 현재의 나, 그리고 미래의 나까지 그 모습들을 글자로 표현하려고 생각하고 또 생각한다.
글을 쓰다 보면 자연스레 삶을 돌아보게 된다. 내 마음 안에 품고 있던 씨앗들이 한 단어, 한 문장으로 자라난다.
내가 가진 생각에 글로 생명력이 생겨 누군가에게 전해질 때, 그 자체로 감사한 마음이 든다.
이 시간이 소중하다.
예전엔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 무척 신경 쓰였다. 그 시선을 지나치게 의식하곤 했다.
나도 누군가를 부러워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내게 있는 것’에 집중하고, 지금의 삶에 감사하며, 나 자신을 사랑할 때, 나는 가장 빛난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나를 소중히 여겨야 타인도 진심으로 소중히 대할 수 있다.
내가 온전한 나일 때, 그 자체가 ‘매력’이다.
나는, 굉장히 천진난만할 때가 있고, 진지하며 심각할 때도, 유쾌할 때도, 때론 이상할 때도 있다. 거울을 보며 혼잣말을 할 때도 있고, 길을 걷다 문득 깊은 생각에 빠져 이상한 길로 간 적도 있다. 그 순간의 나는 홀로 어딘가에 ‘집중’하고 있다.
나 자신과 독대하는 이 시간은 익숙함과 고독 사이를 오간다. 계속 유지하는 이유는 이 느낌이 나를 더 나은 삶으로 이끌고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점점 더 나를 알아가는 것이 어렵게 느껴진다. 한편으론 또 살아가며 어떤 내가 나올지 궁금하기도 하고.
이것저것 밸런스를 맞춰보며 매일을 살아가고 있다. 그래도 뚜벅뚜벅 걷고 있는 지금의 내 삶이 점점 더 좋아진다.
이 마음이 변치 않기를.
요즘 들어, '가정'에 대해 자주 생각하게 된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엄마가 되고 싶었다.
여자아이들이 흔히 하는 역할 놀이 중에서도 유독 ‘엄마 놀이’를 좋아했다. 여동생과 인형들을 나란히 앉혀놓고, 내가 엄마인 척하면서 상황극을 벌이곤 했다.
기억나는 장면이 있다. 초등학생 때, 엄마가 화장실에서 씻고 계실 때 나는 문 밖에 쪼그려 앉아 이렇게 물었다.
“엄마, 아기 낳는 거 안 무서워? 배 안 아파? 어떻게 세 명이나 낳았어? 어우 어떡해, 나는 무서워”
엄마가 되고 싶긴 한데, 아이 낳는 게 무섭고 아프다는 말을 들어서 괜스레 걱정이 되어 엄마에게 물어봤던 것이다. 어린 마음에 꽤 진지하게 던졌던 질문이었다.
웃긴 애였다.
‘마더링(Mothering)’이라는 개념이 있다.
단순히 아이를 기르는 것을 넘어, 누군가를 보살피고 돌보는 행위.
전통적으로는 생물학적 어머니의 역할에 국한되었지만, 이제는 아버지, 교사, 공동체 등 누구나 수행할 수 있는 심리적. 사회적 역할로 확장되었다.
심리학에서는 애착 이론과 연관 지어 ‘마더링’이 아이의 정서적 성장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본다. 이처럼 마더링은 단순한 양육 행위를 넘어서 우리 모두 내면 깊은 곳에서 작동하는 심리적 에너지이기도 하다.
심리학자 칼 융(Carl Jung)은 ‘어머니적인 삶’이란 단순히 자녀를 낳고 기르는 것을 넘어, 생명과 영혼을 돌보며 태어나게 하는 영적 능력이라 설명했다.
인간을 정서적으로 감싸주는 힘.
세상에 무형의 생명을 품는 존재.
공동체 안에서 회복과 치유를 일으키는 사람.
그것이 진정한 의미의 ‘어머니’라고 말이다.
특히 여성은 이 모성적 에너지를 더 강하게 자각하고, 그 에너지를 통해 자기 자신과 타인을 함께 성장시킬 수 있는 존재라고 융은 말했다.
이런 마더링이 아이에게는 안전한 울타리가 되고, 세상과 자신을 건강하게 연결시켜 주는 정서적 기반이 된다.
그 과정에서 아이는 애착을 형성하고, 안정감과 신뢰를 느끼며, 자기 조절력과 정서 표현 능력을 길러 나간다.
첫째라는 위치와 내 성향 때문인지, 나에게는 마더링이 더 많이 느껴지는 것 같다.
엄마는 신혼 초에 유치원 선생님으로 일하셨다. 내가 태어난 뒤로도 1년쯤은 계속 일을 이어가셨고, 그동안 나는 친할머니 댁에서 자랐다. 물론 그 시기의 기억은 없다.
이후 아빠는 엄마에게 아이들 육아에 집중하는 걸 제안하셨고, 엄마는 육아에 전념했다.
그래서였을까. 우리는 어린 시절, 가정이라는 따뜻한 울타리 안에서 결핍을 느끼지 않으며 자랄 수 있었다. 엄마와 아빠가 최고였으며 우리에게 하늘이었고, 땅이었다.
아, 하지만 남동생은 조금 달랐다고 말했다.
동생은 아빠가 누나들에게는 관대하면서 자신에게만 엄격했다고 느꼈단다. 그러다 시간이 흐르면서, 동생은 아빠를 점점 이해하게 되었고, 지금은 누구보다 아빠를 닮아 있는지도 모르겠다. 바르게 성장했다.
어느 날 나는 동생에게 물었다.
“너는 하고 싶은 게 뭐야?”
남동생은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가족 만들기.”
순간 흠칫하며 그 한마디에 묘하게 뭉클해졌다.
아빠를 보고 자랐으면 분명 좋은 '아빠'가 될 것 같다.
나 역시 언젠가 내 아이들에게 사랑으로 깊게 뿌리내린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주고 싶다는 바람이, 어느새 마음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있음을 느낀다.
20대의 나는 이렇게 나를 알아가고, 만들어가며 발버둥 치고 있는 중인 것 같다.
그냥,
그런 생각을 한 나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