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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파수 93.1 MHz.

종로 3가

by 실버레인 SILVERRAIN


불편한 감정이 올라왔다.


누구 붙잡고 이야기하고 싶었는데, 심호흡 크게 열 번 하며 그냥 혼자 입 꾹 닫고 걸어야겠다고 마음이 바뀌었다.


혹시 들어주실 분은..... 010.....


그래서 나는

종로 3가로 갔다.






낙원상가가 보인다. 학창 시절, 첼로를 배우던 때 부모님과 함께 이곳에 와서 악기를 샀던 기억이 난다. 들어가 보고 싶었지만 문이 닫혀 있었다.


종로 3가에는 음식점들이 많다. 퇴근한 사람들이 모여 시끌벅적한 뒷골목. 특히 아저씨들이 많이 보인다. 나는 이곳을 빠른 걸음으로 걸었다.



음식점들을 지나 탑골공원이 나왔다.



1919년 3·1 운동 당시, 이곳에서 독립선언문이 낭독되고 독립만세의 함성이 울려 퍼졌다. 이 앞을 지나는데 문득 선조들에게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그분들의 희생이 초석이 되어 지금의 우리나라가 이렇게 성장해 온 걸 생각하면서.



저기 남산타워도 보이고.


처음에 남산에 가려고 했으나 오늘은 원피스를 입어서 평지를 걷기로 했다.



속이 너무 답답해서 길게 숨을 내쉬고는 지휘자 카라얀이 지휘한 베토벤 교향곡을 틀었다. 셋잇단 음표가 귀 속을 휘젓는다. 마음을 들었다 놓는 그 흐름에 조금씩 가라앉는다. 음악에 귀를 맡기고 걷다 보니, 어지러웠던 마음이 조금은 풀렸다.



Beethoven 9th Symphony - Herbert von Karajan

https://youtu.be/O3MVY6UiMag



엄마는 우리 어릴 적 항상 라디오로 클래식 음악을 틀고 집안일을 하셨다. 주파수는 93.1 MHz.


음악을 들으며 그때의 기억이 떠올랐다. 자라면서 점점 엄마와 취향이 닮아가는 내 모습을 보고 문득 놀랄 때가 있다.



안국역 쪽으로 갈까 하다 그냥 1호선을 따라 청계천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소소한 물멍



걷다 보니 길가에 기타 치는 남자가 있어 잠시 뒤에 앉아 감상했다. 마치 영감을 받아 곡을 쓰고 있는 듯한 모습이었다. 뒤에서 조용히 마음속으로 화이팅..!


닭장 같다.

나도 잠시 앉아서 하늘을 보았는데, (건물을 보았다.)



걷는데 어디서 향기가 난다.


걸음을 멈추고 뒤돌아보니 얘네들이었다. 생각에 잠겨 그냥 지나칠 뻔했는데 멈춰 서서 향기를 한 번 깊게 들이마셨다.



시청 쪽으로 향하다 덕수궁 돌담길을 만났다. 여기를 연인과 걸으면 헤어진다는 소문이 있다.


왜일까? 궁금해서 찾아보니,


예전 이 길 옆에 서울가정법원이 있어서 같이 걸으면 법원에 들어가 이혼하게 된다는 이미지가 생겼다고 한다.


헤어질 남자 없으니 아무 걱정 없이 그냥 걸을게요. 하고 걷는다.


몇년 전 방문했던 와플집도 그대로- 여기 와플 맛있어요


풍경을 보며 다른 생각들을 하니 답답함이 좀 가셨다.



시청을 지나 서울역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며 숭례문이 시야에 들어왔다. 숭례문 하면 자연스럽게 ‘방화’가 내 머릿속 연관검색에 뜬다. 초등학생 때 한창 숭례문 방화로 뉴스가 도배되어서 그런지?


빛을 받은 숭례문은 아름다웠다. 하지만 자동차 불빛에 묻혀버린 듯해 아쉬웠다.


집에 가자요


서울역 도착.


오늘 걸으며 생각한 것들은 다음 행동에 영향을 미칠 듯싶다. 글 밖에서는 누군가의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가 되어주는 편이라, 이렇게 글로 쓰는 게 나에겐 좋은 것 같다. 차분히 정리도 되고.


Born again 하는 마음으로 살겠다고 생각하며 오늘의 걸음을 마친다.



만약 이 글을 읽으셨다면,

종로 3가부터 서울역까지 같이 동행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




하루 지난 오늘, 마음이 훨씬 더 괜찮아졌다. 몸을 움직이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다.


어젯밤, 집안 어른의 부고 소식을 듣고 오늘 장례식장을 간다. 내가 크게 느꼈던 것이 아주 작았음을 다시 한번 느끼고 받아들일 건 받아들이고 흘려보낼 건 흘려보내기로.


어떤 일을 마주했을 때 삶을 대하는 태도는 참 중요한 것 같다.


Just another 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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