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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이난달 Jun 26. 2020

단편 습작

1

"근데, 선생님은 왜 선생님이 됐어요?"


선영이는 나 같은 사람이 어떻게 선생님이 되었냐는 듯한 눈빛으로 물었다. 글쎄 수학이라는 과목과는 안 어울리는 이미지라나. 중학생 때만 해도 삼국지와 이순신을 좋아하던 난 역사학자가 되고 싶었다.


"음.. 그건 말이지 사실 별 거 아냐"


별 것 아니라고 했지만 사실 내 인생을 송두리째 바꾼 일이기도 했다. 남이 보기에 별 것 아닌 것들이 누군가에겐 중요한 계기가 될 수 있으니까.


그때 난 중학교 1학년이었다. 중학교는 참 낯설었다. 몸보다 커다랬던 교복부터 구레나룻가 귀 중간을 넘으면 안 되는 머리 규정까지 모든 게 생소했다. 그중에서 가장 이상했던 건 급식카드였다. 우리 학교는 점심을 식당에서 먹었다. 들어가기 위해선 급식카드를 보여주고 식당 아주머니로부터 도장을 받아야 했다. 급식카드에 도장 찍을 칸이 없다면 그날 식당에 들어갈 수 없었다. 그럴 땐 친구에게 부탁해 아주머니께 두 번 도장을 받아야 했다. 물론 다음번엔 꼭 갚기도 하고.


그 시절 나 같은 친구들은 급식카드를 담임 선생님께 따로 받았다. 보통 스무 칸이 끝나기 전에 선생님이 우리들을 따로 불러서 주시곤 했다. 나는 그때 처음으로 교무실은 혼나는 학생이나 반장만 가는 곳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그리고 처음 나를 포함한 두어 명만 따로 급식카드를 받던 날 누구도 설명해주지 않았지만 우리의 공통점을 알 수 있었다. 학기 초 기초수급대상자에 대한 가정통신문에 무료 급식을 신청한 아이들이었다. 급식카드 색이나 디자인이 다르지 않은 건 다행이었다.


그날의 나는 급식카드가 없었다. 정확히는 받지 못했다. 급식카드는 단순히 작은 종이 하나가 아니었다. 내 점심을 책임졌다. 나아가 점심시간에 홀로 앉아서 아무렇지 않은 척하거나 매점에 간다는 거짓말을 해야 했다. 나는 그저 다른 아이들과 같이 있고 싶었을 뿐이었다.


새로운 급식카드를 찍어야 하기 전 날까지 담임선생님의 호출이 없자 가슴이 두근거렸다. 이윽고 빈 손이 된 날이 왔고 난 조바심이 났다. 학교에 가기 싫었다. 어린 나는 죽을 상을 지었고 친구들은, 어디 아파? 괜찮아? 와 같은 말을 했다. 나는 친구들에게 그런 식으로 관심받기 두려웠다.


3교시가 끝나고 쉬는 시간이 되었다. 돈도 급식카드도 없던 난 정수기로 향했다. 꼬르륵 소리라도 나면 곤란했다. 아침에 엄마에게 돈 달라고 하고 싶었지만, 어차피 없다는 걸 알기에 할 수 없었다. 그때 이삼천 원은 내가 감당하기 큰 금액이었기 때문이다.


정수기 컵을 잡는 순간 누군가 내 이름을 불렀다. 옆에 2반 담임 선생님이셨다. 수학선생님이었던 그분은 항상 개량한복을 입고 다니시곤 했다. 내 이름표를 확인하고는


"왜 급식카드를 잃어버리고 다녀, 여기 가져가"


라고 말씀하시면서 내 손에 급식카드를 쥐어주셨다. 아, 나는 잃어버린 적 없는데. 나는 제대로 된 답변도 못했고 선생님은 그렇게 복도를 떠나셨다. 선생님의 뒷모습은 마치 아무 일도 아니라는 것처럼 말하는듯 했다.


나는 그날 점심을 먹었다. 다른 때와 같이 급식실까지 뛰어갔고 내 급식카드를 꺼내 도장을 받았다. 점심시간은 무척 짧았다. 이윽고 시작된 5교시 국어시간, 자신의 장래희망을 적어 발표하는 시간을 가졌다. 나는 망설임 없이 '수학선생님'이라고 빈칸을 채웠다. 그날은 내 번호와 같은 날이었다. 나는 마지막 발표자였다.


"수학... 선생님이 되고 싶습니다... 이유는 고마워서..."


나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아니 말할 수 없었다.










<교육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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