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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이난달 Jun 28. 2020

단편 습작

2

"그래도 언젠간 하늘을 날 거야."


"또 그 소리야? 헛소리 좀 그만해라"


"왜 멋있잖아. 하늘을 날고 구름을 넘어 별을 보니까"


"넌 속도 좋다 참 좋아. 바이러스 때문에 난리라 비행기도 안 뜨는데 무슨 파일럿이야. 그런 거 말고 차라리 공항에서 일해. 요즘 난리지만."


어느새 길어진 해마저 사라지고 몇 없던  손님들도 떠난 뒤였다. 가게는 우리 둘 대화로 채워졌다.


"그래서 기어코 언제 자리가 날지 모르는 파일럿을 준비하겠다고?"


"응, 어릴 때부터 꿈이었으니까."


"그때는 그때고. 우리 나이도 곧 서른이야. 이젠 책임질 게 늘어나기만 한다고. 고집으로 될 게 아니라니까 그러네. 때론 포기하는 것도 용기야."


"해볼 때까지 해봐야지"


그러곤 친구는 홀로 술을 넘겼다. 나도 질세라 따라 마셨다. 을 못 치는 분위기라도 같이 취해야 했다.


우린 초등학생 때부터 중학생 때까지 연속으로 섯 번이나 같은 반이 된 적 있다. 집 가는 방향이 같기도 하고 오래 보다 보니 자연스레 친해졌다. 이 녀석은 나랑 다르게 공부를 꽤 한 편이라 인문계 고등학교를 고 서울 안에 대학을 나왔다. 나야 공부보단 빨리 일을 하고 싶었고 스무 살부터 마트에서 일했다. 그래도 서른이 되기 전에 경력도 꽤 쌓았다. 먹고살만하기도 했고.


"내가 부러우면서도 아쉬워서 그래, 아쉬워서. 너 정도 스펙에 갈만하고 멀쩡한 곳 많은데 왜 그것만 집착하냐 이 말이지. 나야 그렇다고 치고. 그리고 어머님 생각은 안 해? 홀로 계시는데.."


말하면서도 아차 싶었지만 친구 놈은 딱히 표정이 변하거나 하진 않았다. 대신 연 푸어 잔을 들이켜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그리고 입을 열었다.


"엄마랑 비슷한 소리 하네 너도."


친구 녀석은 웃음을 지었다.


"나 어릴 때였어. 아빠 돌아가시고 꿈을 꿨는데, 하늘에 달이 보이더라. 그리고 둥그런 달이 네모가 되었고. 어느 순간 달이 아빠가 됐어. 그리고 아빠가 말했어, 어서 위로 올라와서 같이 놀자고. 너도 알잖아. 우리 아빠가 나 엄청 잘 놀아줬던 거. 거실에서 비행기도 태워주고."


초점을 잃은 눈으로 말하는 친구 말에 나는 알지, 하고 짧게 답했다. 가끔 놀러 간 친구네 집에서 본 친구 아버지는 가정적인 분이셨다. 가끔은 부러울 정도로.


"그쯤부터인가 파일럿이 되고 싶었던 거 같아. 하늘을 날고 싶다고. 달에 가까워지고 싶다고."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나도 솔직히 모르겠어 요즘. 힘든 시기인 거 알고 그런데 포기를 못 하겠어. 오죽하면 엄마도 말릴까. 근데 있잖아. 그거 알아? 이걸 포기하면 앞으로 아무것도 못할 느낌. 남은 삶에 대한 절망이 아니라 살아온 삶을 부정하는 느낌."


"취했다. 나가자. 많이 먹었어."


빈 공간이던 테이블은 서너 병이 넘는 소주로 채워져 있었다. 안주도 없고 이젠 정말 가야 했다. 대중교통 시간도 짧아졌으니까.


"아무도 없어. 아무도. 내가 날 수 있다고 하는 사람은. 엄마도 너도. 다른 누구도."


"뭐? 뭐라는 거야. 나가자고. 빨리!"


말이 길어질 것 같았다. 가끔 이런 모습을 본 적 있었지만 오늘은 뭔가 달랐다. 빨리 집에 보내야 할 것 같았다. 나는 친구를 끌고 나왔다. 도로변엔 손님을 기다리는 붉은 불빛의 택시가 많았다. 나는 맨 앞에 가서 저씨 노원이요, 하고 친구를 시에 태워 보냈다.


그게 친구의 마지막 뒷모습일 줄 몰랐다. 며칠 뒤 친구 장례식엔 친구 어머니가 울부짖고 계셨고 상주는 나도 몇 번 본 적 있는 친구의 친척동생이 하고 있었다.


"오셨어요."


상주와 짧은 인사 뒤 이젠 영정 사진 속 친구에게 절 두 번 반으로 빌고 부조금을 넣었다.


"식사하시죠. 그리고 드릴 게 있어요."


상주에 안내에 따라 자리에 앉자 그는 이내 낡은 그림일기를 내밀었다. 친구가 남긴 마지막 유언에 있는 내용이라 설명했다.


나는 책장을 넘겼다. 무슨 이야기 때문에 이걸 나에게 줬을까 하고. 책장을 넘긴 지 중간쯤 왔을까. 아빠 얼굴을 한 달이 있었다. 네모난 달. 그리고 그 아래 친구로 보이는 작은 아이는 날개를 가지고 흔들고 있었다.


그림 아래엔 엄마에게 나는 날지 못한다고 혼났다는 것과 언젠가 하늘의 별이 되어 춤추고 싶다는 내용이 서툰 글씨체로 쓰여있었다. 나는 더는 읽을 수 없었다.


장례식장을 나온 하늘은 어두웠다. 그날따라 달과 별을 보고 싶었지만 보이지 않았다. 구름 때문인지 가로등 때문인지 아니면 다른 게 내 눈을 가리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오리 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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