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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이난달 Jul 10. 2020

단편 습작

7

"언니, 진짜 김 부장 걔 너무 하지 않아? 아니 언니에게 어떻게 그럴 수 있어? 언니가 이번 프로젝트에서 얼마나 고생했는데... 하, 내가 더 속상해"


"울먹이지 마, 내 일인 걸 뭐. 다음에 또 기회가 있겠지."


"아니 웃기잖아. 언니만 맨날 야근하고 자기는 막 술 마시러 다니고. 그런데 언니 공은 싹 빼고 다 자기가 한 것처럼 보고하고. 웃겨 진짜. 언니는 억울하지도 않아?"


"뭐... 그래도 어쩌겠어. 나는 이제 대리도 겨우 달았는걸."


"언니! 이럴 때 보면 진짜 답답한 거 알아?"


설이는 홀로 빈 잔에 소주를 채우더니 입으로 털어 넘겼다. 3년 전, 회사에서 처음 회식 자리를 가졌을 때처럼 술을 마실 땐 얼굴의 온 근육을 다 써서 찡그리던 아이가 이젠 꽤 컸다. 회사 생활 동안 주량은 또 어찌나 늘었던지 소주 한두 잔이면 빨갛게 달아오르던 얼굴이 이젠 한 두병으론 털색 하나 안 변하고 있다.


"그리고 팀장님도 너무 하셔. 지 새끼는 안 챙기고 가만히 있고. 하 짜증 나 진짜. 어째 회사에 있는 나이 좀 있단 사람들은 죄다 꼰대인지."


"라떼는 라떼는 해도. 어쩌겠어. 그 사람들 말대로 노력도 많이 필요하긴 하지. 생각해봐 그 사람들 우리 나이 때는 얼마나 역사가 다이내믹했어. 가난이다, 민주화다, 뭐 그런 것 많았잖아."


"그래, 그랬지. 그건 인정. 근데 언니, 그거 알아? 그땐 삼성이니 현대니 다 경쟁률 6대 1이었대. 6대 1. 그걸로 그게 '사상 최악의 청년실업' 이런 식으로 뉴스도 났고. 또 운은 얼마나 좋아. 대학만 나오면 여기저기에서 모셔가려 하고. 그때 그 사람들 회사 생활이 아무리 뭣 같아도 존버 하면 대출에 퇴직금 해서 집 사고 그랬잖아. 그리고 그게 다 지금 땅값 올라서 한몫들 두둑 히들 챙겼고. 언니나 나 같은 학력에 그때 시대면 우린 구글 코리아 뭐 이런 데 갔을 걸."


"그건 뭐 그렇지. 그래도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지지 않을까?"


"괜찮아지겠지. 금수저들은. 우린 오십육십 될 쯤이면 폐지 줍는 것도 경쟁할걸? 내 집은커녕 지금 먹고살기도 힘들잖아. 그러니 결혼도 안 하고 출산율도 떨어지지. 솔직히 나도 하기 싫어 다. 나 혼자 사는 것도 너무 힘들어. 부모님 보험비에, 내 학자금에... 신경만 써도 골이 아파. 미래는 솔직히 모르겠어."


"하긴, 그러네."


나는 짧게 설이의 말에 동감하면서 취업하면 부모님 용돈도 몇 십씩 드릴 줄 알았던 때가 생각이 났다. 그리고 회사를 막상 다녀보니 조금 저축하고 나면 그것도 힘들었다. 


"솔직히 나도 겉으로는 긍정적인 척 하지만 여기가 맞나 싶고 그래. 근데 있잖아. 옆에 친구들, 선배, 후배들 보면 요즘 취준이 너무 힘들어 보여서 퇴사할 용기도 안나더라."


"이 언니 이제야 좀 속마음을 말하네. 그래 그렇다니까? 아무도 우리 세대 마음을 몰라준다고. 90년대생이 온다? 오긴 무슨. 그 사람도 90년대생이 아닌데 뭘 알아 알긴. 차라리 위로를 해주지 그래. 솔직히 우리만 한 세대가 어딨어? 교육은 받을 때로 받아, 사교육은 역사상 최고일걸? 근데, 우리 월급은 물가 상승률에 못 따라가. 인풋 대비 아웃풋이 너무 없다고. 가끔은 후회도 돼. 내가 이러려고 이런 회사에 오려고, 학점 챙기고, 마음에도 없는 봉사 다니고, 자격증 따고, 제2외국어 하고.. 언니도 알지? 나 대외활동도 3개나 했잖아."


"알지. 전에 이야기해줬잖아. 그 인사팀 팀장님도 거기 중 하나 출신이라며."


"그래! 내가 2차 면접 볼 때 얼마나 어이가 없던지. 그 이야기가 나오니까 좋다고 떠들어대는 거야. 나는 시간도 없는데. 암튼, 부모님으로 배운 건 하나도 회사에서 먹히지도 않고. 하. 그래도 언니가 있어서 다행이야 나는."


"나도 다행이야 정말. 솔직히 나도 너무 힘들어. 이럴 거면 그냥 내가 하고 싶은 일 한다고 할걸. 어차피 한 번뿐인 인생인데..."


"언니는 뭐하고 싶었는데?"


"음... 모르겠어. 어? 설. 웃지 마. 나 진지해. 정말 모르겠어. 기억이 안 나. 그냥 하루하루 가기 싫은 회사를 위해 일어나고 출근하고 퇴근하고... 적어도 내 꿈은 이런 게 아니었어. 대출금 갚는 건 더더욱 아니었고."


"하... 우리 왜 이러냐 진짜. 어디서든 진지하게 우리 위로해주는 사람들은 없는 것 같아. 나라고 그렇고. 위아래 세대 다 그렇고. 나는 정말 발버둥 치고 있는데. 누구도 인정해주지 않잖아."


"설아, 그래도 힘 내보자."


"언니. 나는 정말 모르겠어. 진짜 모르겠어. 우리 엄마 아빠는 막 성공하고 다 성취하고 살아왔는데. 나는 뭐 하고 있는 건지. 내 자존감은 어디에 있는지. 이제 알겠어 사람들이 자존감 찾는 책을 왜 사고 읽는지."


"나도, 설아. 춥다. 이제 그만 가자. 내일도 출근해야지."


설이를 정류장에 데려다주고 나는 집에 돌아왔다. 회사를 걸어서 다닐 수 있다는 것은 큰 행운이었다. 현관을 지나 거실에 오자 키보드를 하나씩 누르고 있는 아빠가 보였다. 아빠는 새로운 시대에 맞게 공부한다고 했다. 화면을 보니 줌 화상 회의 연습을 하고 있었다. 나는 간단한 기능들을 조금 도와줬다. 아빠는 예전에 배운 게 쓸모도 없고, 자신이 배운 기준은 다 흔들린다고 투정 부렸다. 나는 나도 모르게 입 밖에서 그 말을 되뇌었다. 나지막하게.


"예전에 배운 건 쓸모없고 기준은 흔들린다."










<팬데믹 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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