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변 사람을 롤모델로 삼지 않는 이유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서 보면 비극

by 김이난달

영어학원 다니던 시절 있던 일이다. 친하게 지낸 형, 동생, 친구들과 한 금요일에 술자리를 가졌다. 여느 술자리처럼 이런저런 이야기가 오갔다. 그러던 중 가족 이야기가 나왔고, 한 동생이 아버지를 존경한다고 했다. 난 신기하고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이윽고 “가까운 사람은 존경하기 힘든데 대단하다”라고 말했다. 그만큼 그렇게 느끼게 한 그 친구의 아버지는 훌륭한 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난 어느 순간부터 주변인을 존경한다고 말 못 했다. 학창 시절엔 위인을 빼면 가족을 존경한다고 말했다. 실제로도 그렇게 생각했다. 이런 환경에서 저렇게 행동하는 게 놀라워 보였다. 교복을 입은 난 롤모델을 멀리서 찾지 않았다. 그들처럼 열심히 살아가리라고 다짐했다.


20대가 되고 어느 순간부터 롤모델을 바꿨다. 내 롤모델들에 대해 알아 갈수록 기대보다 실망이 크기 때문이었다. 사회에 대해 피부로 느끼고 머릿속에 알아 가는 게 늘어가면서 더는 존경이란 단어를 쓰기 힘들었다. 롤모델과 술잔을 기울이는 자리에선, 존경을 위해 알 필요 없었던 이야기들을 들었다. 그들도 사람이었고 결점은 존재했다.


이후 내 롤모델 리스트는 거리가 있는 사람들로 채워졌다. 내 분야의 정점 혹은 본받을 만한 사람들을 이정표로 삼았다. 그 분야에 자부심을 느끼고 꾸준히 살아간 사람들이었다. 지금도 내 롤모델은 업으로서 내가 따라 해야 하는 사람들로 채웠다. 대신 삶의 모토는 스스로 정하기로 했다.


지금 내게 가족은 존경보단 내가 존중해야 하는 대상들이고, 내가 받아온 게 큰 만큼 앞으로 지켜가야 하는 사람들로 남겼다. 주변인들도 마찬가지다. 존경의 의미를 빼니 그들도 나와 같은 사람이었다. 화도 내고, 아프기도 하고, 때론 계획 없이 사는 것처럼 즐길 줄도 아는 사람. 이렇게 생각하고 나니 누굴 만나도 마음이 편하고 친구가 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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