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를 보낸 지 4주가 되었다. 시간은 간사하다. 시간은 나와 30년 가까이 함께한 세계의 한 축이 무너뜨렸지만, 세상은 슬프도록 그대로 두었다. 어김없이 핸드폰 요금은 나갔고 버스를 타고 학교에 가야 했다. 중간고사도 일정대로 봐야 했다. 어벤져스 스포일러를 조심해야 했고, 인스타그램 화면 속 사람들은 행복해 보였다. 한때 아빠가 묻었던 내 오른손은 이제 비어있다.
장례식장에서 많은 친척을 만났다. 나는 나에게 이렇게 많은 친척이 있는 줄 몰랐다. 명절에도 보지 않았던 분들을 만나는 건 반가운 일만은 아니었다. 수많은 험담을 들어야 했다. 한 사람이 인생을 어떻게 살았는가에 대한 대답은 장례식장에서 가늠할 수 있다는 걸 배웠다. 확실한 건, 좋은 남편과 좋은 친척은 아니었나 보다. “이 세상 살 때 아빠 노릇, 남편 노릇 못 했으니까 거기 가서는 잘 좀 봐주시오.” 한 외삼촌께서 말씀하셨다.
내 생각보다 많은 아빠의 지인이 장례식장에 찾아왔다. 확실히 아빠는 가족보다 남에게 잘하는 타입이었나보다. 엄마는 내가 일본에서 사 온 과자들을 일하는 사람들에게 나누어줬다며 불평 아닌 불평을 했다. 이따금 아빠는 점심 도시락에 본인만 먹기에는 많은 양의 반찬을 담아달라 엄마에게 부탁하곤 했다. 아빠는 ‘아빠’라는 단어보다 좋은 ‘친구’ 혹은 좋은 ‘동료’라는 말을 더 중요하게 생각했나 보다.
그러고 보면, 아빠는 해야 하는 일을 하는 것보단 하고 싶은 일을 더 중요하게 여겼다. 비 오는 날에 일하고, 날씨가 좋으면 놀러 갔었다는 형의 증언은 충격적이었다. 나는 참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열심히 살지 않아서 지금까지 힘든 삶을 살았다는 게 더 논리적으로 맞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아빠는 자기 삶에 대해 후회하는 말을 단 한 번도 꺼내지 않았다. 그는 온전히 자기 운명을 받아들인 사람이었다. 얼핏 숭고해 보이기까지 했다.
독선적인 추측이지만 그는 그 어떤 의무보단 자신의 권리를 원했고 또 자유를 쟁취했다. 누군가의 ‘아버지’라는 단어를 자신의 어깨에 짊어지기에는 자유로운 영혼이었다. 아빠의 삶에서 자유란 무엇을 의미했을까? 죽음 덕분에 어떤 의무에서 진정 해방된 것은 아닐까. 그래서 그렇게 빨리 돌아갔을까? 그러나 그의 자유가 나를 사랑으로부터 버림받게 했다면, 자유란 대체 어떤 것일까. 한 가지 분명한 건, 죽음만이 아빠를 진정으로 자유롭게 만들었다는 사실이다. 만약 이 땅에 다시 돌아온다면, 나는 아빠가 다시 인간으로 돌아오지 말고 그 누구에게도 책임과 의무를 없는 무언가로 살아가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