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기

by 김이난달

사람의 죽음은 사소한 것들까지 떠올리게 하고 묘한 감정을 만들어낸다. 그런 감정들은 이따금 과거 미화로 이어지기도 한다. 감정이란 놈은 예측하기 힘들다. 일요일 아침의 따스한 햇볕이 정오의 그림자처럼 사라지기도 하고, 오후의 고요함에 길게 늘어지는 것처럼 변한다. 지금 기억은 “지금의 나는 그 사람처럼 그렇게 할 수 있을까?”라는 물음에 대해 쉽사리 답하기 어려운 이야기다.


지금도 그렇지만 나는 목적지에 늦게 도착하는 걸 싫어했다. 학창시절 남들보다 1시간씩 빨리 갔다. 또래들로 북적일 교실에 혼자 있다 보면 스스로 특별한 사람이라고 여기곤 했다. 이런 만족감을 위해선 버스를 타야 했다. 걸어서는 30분 거리에 있던 내 중학교는 버스로 네 정거장에 불과했다.


그러다 보니 출근 시간을 맞이하기 전 버스를 타면, 텅 빈 거리를 만끽할 수 있었다. 그날은 유난히 버스가 빨랐다. 마치 아우토반을 달리는 스포츠카처럼 빨랐다. 물론 어린 시절 나의 체감만 그랬다. 그날 저녁 나는 무심결에 아빠에게 오늘 아침 버스가 너무 빨라서 무서웠다고 말했다. 무서웠던 것은 사실이지만 덕분에 나는 학교에 일찍 도착해서 좋았다.


그런데 이게 웬걸, 아빠가 버스 노선을 묻더니 다짜고짜 그 회사에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아빠는 버스 회사 직원에게 따지기 시작했다. 오늘 아침 몇 시경 몇 번 버스 기사가 너무 빨리 운전해서 우리 애가 놀랐다느니, 그러다가 사고가 나면 어쩌냐느니, 기사 바꾸라느니 따위 문장들이었다.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인생의 반절은 술에 취해 살던 아빠라면 아마 음주한 뒤였을 것이다.


그 시절 아빠의 그런 모습이 부끄러웠다. 술에 취한 사람의 성을 듣는 것만큼 괴로운 일도 없었다. 나는 한산코 끊으라고 말렸다. 다른 사람에게 피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작았던 내 손길을 뿌리친 아빠는 그 뒤로 수 분간 직원과 실랑이를 벌인 뒤 전화를 끊었다.


나는 때때로 왜 배워야 하는지 의문을 가진 학문이 있었다. 대표적으로 수학이었다. 천성부터 문과였던 나는, 이를테면 중학생 시절 사인과 코사인 같은 게 내 인생에서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현재의 시점에선 문제를 좀 더 여러모로 보기 위한 정도로 위로할 수 있겠다.


지금에서야 돌아보니 아빠의 행동은 온전히 나를 위했다. 아빠는 자신이 아빠라는 걸 알았다. 작은 아이였던 나에게 아빠란 존재는 수학처럼 왜 알아야 하는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사람은 다른 모든 사람에게 사랑받을 수 없는 존재다. 그렇기에 자신의 사람들에게 잘하는 게 더 가치 있다. 아빠는 언제부터 이런 사실을 알았을까. 언제부터 그렇게 다른 사람들에게 미워졌을까. 나는 그럴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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