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이 맘에 든다는 이유만으로 좋아할 수 있을까
커플이 될 운명이었을까?
우린 마치 커플이 될 운명이었던 것처럼 잘 맞는 점이 많았다. 서로의 존재를 몰랐을 때부터 사랑에 빠졌을지도 모른다. 혹자는 말도 안 된다고 하겠지만 누군가를 좋아하는 현상의 이유를 찾는 건 원래 말도 안 된다.
처음 좋아한다는 마음을 말로서 표현한 날. 우리가 연애를 시작한 첫날. 고백에 대한 마음가짐이나 계획 같은 건 없었다. 특별한 상황을 만든 것도 아니고 멘트를 준비하지도 않았다. 커플이 될 거라는 결론이 이미 나버린 것처럼 자연스럽게 관계가 흘러갔다. 좋아한다고 말했다. 나는 우리 사이를 확실히 하고 싶었을 뿐이었다. 그녀에게 불안감을 심어주기 싫었다. 고백은 그런 모든 과정에 대한 확인이었다.
내가 고백했을 때 그녀는 너무 당연하다는 듯 알겠다고 말했다. 그리곤 우린 그 자리에서 6시간 동안 이야기 나눴다. 나는 내가 그렇게 말을 많이 할 수 있는 사람인 줄 몰랐다. 어쩌면 그녀랑만 있으면 그렇게 변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 사실을 깨닫는데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녀와 세 번째 만남이었다.
그녀랑 있는 시간 동안 나는 내가 모르는 나에 대해 점차 알게 됐다. 마치 모니터를 통해 나를 위한 특별 강의를 보는 듯했다. 그녀와 함께라면 괄호 속에 있던 나를 꺼낼 수 있었다. 서로의 맘을 확인한 그 날, 그 순간이 오기 전에 함께 연극을 봤다. '재밌다'라고 표현하면 서운할 정도로 재밌었다. 나는 내가 연극을 좋아하게 될 줄 몰랐다. 그 날 전까지 내게 연극은 대학 과제를 위한 것일 뿐이었다. 나는 원래 연극을 좋아하기로 되었던 사람이었을까? 아니면 그녀랑 있어서 좋았을까?
이름이 맘에 든다는 이유로 누군가를 좋아할 수 있을까? 내 대답은 '그렇다'다. 사랑에 빠진 이유에 거창한 내용은 필요 없었다. 단지 '그냥'이라는 단어가 내 맘을 모두 담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좋아하는 행운을 놓치기 싫었다.
<다시 오지 않을 그녀와 2020년 2월 22일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