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만나 다행인 여자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그녀를 만나지 한 달이 넘었다. 여기서 만났다는 의미는 '공식적인 커플'이 된 순간부터가 기준이다. 그녀를 처음 만난 건 한 달 반 정도 전이다. 친한 선배의 친구 지인이 추천한 여자였다. 소개팅으로 만나기 전 그녀는 간단히 말해 '남'이었다.
2번의 CC, 5번의 소개팅, 몇 번의 썸이 지난 뒤에 오랜만에 나선 소개팅 자리였다. 그동안의 경험이 낳은 생각은 '소개팅이란 모르는 사람과 편안하게 대화하고 오는 자리'였다. 상대가 어떤 사람인지도 모르는데 굳이 내가 애써 잘 보일 필요가 없었다.
그런 마음으로 소개팅에 나섰던 그녀와는 만남 전 나눈 카톡부터 즐거웠다. 그녀는 그녀 쪽 주선자에게 보낼 톡을 나에게 잘못 보냈다. 그리고는 삭제했는데 마침 내가 핸드폰을 보고 있던 중이라 내용을 읽었다. '소개팅을 위해 최초로 연락 후 약속만 잡고 굳이 연락을 이어가지 않았다'라는 내용을 그녀가 주선자에게 하고 있었다. 어쨌든 그녀의 실수로 연락을 이어갔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서 그날 늦은 밤에서야 톡이 끝났다.
그리고 처음 만난 금요일, 그녀는 겨울의 끝을 알리는 것 같은 뭔가 모를 좋은 기운을 품고 있었다. 커피 마시자, 맥주 마시자라고 서슴없이 리드하는 게 매력적이었다. 우린 서로를 알아갔다. 그 뒤로 3시간 동안.
처음 만난 사람하고 이렇게 오랜 시간 동안 이야기해본 적이 없었다. 더군다나 소개팅에서 여자와는 더더욱. 그간의 대화들은 침묵을 허용하지 않았고 스스로를 조급하게 만들었다. 반면 그녀는 달랐다. 그녀와의 대화는 시종일관 재밌었다. 그녀와 함께라면 이유모를 편안함을 느꼈다.
그 날 다음엔 언제 만날지 정했다. 다음 만남 날짜를 정하는 내 물음에 그녀는 스스럼없이 좋다고 답했다. 마치 내 질문을 기다렸다는 듯이.
문득 지금 만나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내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면? 소개팅이 처음이었다면? 연애해본 경험이 없었다면? 내가 취업을 못했다면? 우리가 지금 만나지 않았다면? 여러 질문이 내 머릿속을 지나갔다. 그리고 그간 모든 삶이 이 여자를 만나기 위한 과정 같았다.
우린 서로가 스쳐갈 수 있는 인연을 잡아 지금까지 잘 만나고 있다. 그 시간은 하루를 지나 한 달이 넘었다. 이 이야기의 마침표가 언제 찍힐지 모르지만 지금이 너무 좋아 끝을 상상할 수 없다. 지난날들은 뒤로하고 오늘에 감사하고 내일을 기대하게 되는 하루하루가 됐다. 그녀 덕분에 행복하다. 그녀를 내 인생에 지금 만나 다행이다. 오늘 사랑을 줄 수 있어서 다행이다.
<다시 오지 않을 그녀와 37일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