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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이난달 Jun 05. 2020

어른의 연애를 처음 시작할 때

시작의 설렘, 끝의 두려움 알지만

어린 시절엔 뭐든 가능할 줄 알았다. 내가 상상하는 세계를 만들고, 내가 원하는 직업을 가지며,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면 아름답게 사랑에 빠질 줄 알았다. 그리고 이젠 안다. 내가 어린 시절에 상상하던 그 무엇도 쉽게 되지 않는다는 걸. 나를 둘러싼 세상의 모든 것을 바꾸려면 모든 것에서 그만큼의 노력이 필요했다. 내 삶도, 직업도, 연애도. 그중 연애는 뭔가 달랐다. 내 의지나 노력으로 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었다. 박수를 한 손으로 쳐서 소리 낼 수 없는 것처럼.


사랑은 주는 거라고 여러 매체에서 배웠다. 드라마와 노래 가사에서 단골로 쓰이는 말이었다. 그게 사랑의 진리인 줄 알았다. 그래서 나는 그동안 그렇게 연애했다. 때론 내가 가진 것 이상으로 주기 위해 노력했다. 지난날 연애는 나를 갉아먹었다. 그렇게 나는 어느 순간부터 연애 감정의 고갈을 느꼈다. 어쩌면 사랑은 주는 것이라는 의미는 상한선이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뉴스나 영화, 드라마나 음악에 나올 법한 사랑의 희생에 대한 이야기가 감동을 주는 건, 현실에는 있기 힘들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어린 시절 20대 후반이 되면 어린 시절 상상하던 멋진 남자가 될 줄 알았다. 좋은 대학에 나와, 좋은 집과 차를 가지고 대단한 직업을 가질 줄 알았다. 그 시절 상상하던 그 무엇도 되지 못한 건 어쩌면 당연하지만, 어른이 된 지 조차 확신이 서질 않는다. 나는 예전보다 쉽지 않은 세상에 대해 더 알 뿐, 아직 정신은 예전과 같은 것 같다. 이따금 '소녀 같은 할머니'라는 말을 접하면 이해가 안 되었는데 요즘은 알아들을 수 있다. 연애도 똑같았다. 어른의 연애는 특별한 무언가를 가질 줄 알았지만 그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어른의 연애는 더 단순하다. 사랑만 믿고 누군갈 좋아하지 않는다. 순수하게 누군갈 사랑한다는 건, 역설적으로 인간의 순수한 욕망을 담는다. 사랑 주변을 둘러싼 생존, 삶, 가치관, 재미와 같은 것이 더해진다. 이전 사랑들에서 배운 것들, 주로 잘못된 점들이나 바라는 점들이 늘어간다. 마치 필터를 걸어 쇼핑에 나서는 것처럼 본인이 원하는 연인을 구체적으로 만들어간다. 그리고 우리는 안다. NN 년 간의 인생에서 배운 건, 이상형은 없다는 거다. 어떤 부분에선 포기하는 게 있어야 우린 연인을 만들 수 있다.


그렇게 인생이 흘러가면서 사람은 다방면으로 성숙해진다. 지난날들의 경험은 좋은 나침반이 된다. 연애도 마찬가지. 그런데 인생의 다른 분야들과도 조금 다른 건, 성숙해지는 만큼 또 어려지고 유치해진다. 사실 사랑에 나이는 정말 숫자에 불과하다. 어느 나이에 사랑에 빠지든 우리 모두 어려진다. 연인 주변의 남녀에 대한 질투나 서운함은 누굴 만나도 그대로다. 연인이 잘해줄 때, 나를 이해해줄 때, 사랑받는다는 느낌을 만들어줄 때 느끼는 고마움도 마찬가지다. 어찌 된 게 변하질 않는다. 유통기한은 있을지언정 그 순간의 사랑은 달라지지 않는다.


나는 안다. 지금의 연인에 대한 설렘이 있다는 걸. 언제든 헤어질 수 있다는 걸. 그러나 그렇기에 불안하고, 싸우고, 다투고, 진심으로 대하고, 선물을 사고, 편지를 쓰며, 톡을 보내고, 전화를 한다. 지난날의 후회를 하지 않기 위해. 지금 사랑하는 사람에게 또 다른 후회를 남기지 않기 위해. 그렇게 사랑한다. 지금 사랑하는 이처럼.


어른의 연애 같은 건 글쎄, 딱히 없지 않을까. 사랑마저 어른의 것으로 만들기엔 그 단어의 깊이와 넓이가 충분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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