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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이난달 Apr 20. 2020

그녀가 갑자기 퉁명스러운데 왜인지 모를 때

그녀와 사귀고 이제 반백일쯤 지났다. 모든 인간관계가 그렇듯 연인 사이라도 언젠간 다툼이 생길 거라 생각했다. 풀어내는 방법을 알아야 하는데 나는 그걸 잘 모른다. 그래서 평생을 마찰 없이 살아가려고 했나 보다. 마찰을 없애기 위해 침묵했다. 실제로도 많은 상황에서 그랬다. 물론 전적으로 내 입장이지만. 나는 꽤 이기적이라서 인간관계라는 분야에 대해 생각이 깊지 않다. 또래 친구들이나 선후배들이 인간관계 때문에 가지고 털어놓는 고민들을 듣고 있노라면 '나는 왜 이런 생각을 안 할까'하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그때마다 내린 결론은 나는 그렇게 태어났고 이건 축복이자 저주와 같은 능력이라고 결말지었다.


언제나 편리할 것만 같은 이 능력은 연인관계에서는 딱히 좋지 않은 모양이다. 상처를 주기 싫다 보니 상처 받기도 자연스럽게 싫었다. 그러다 보니 싸움에 이르는 지경이 되면 외면하기 일수였다. 연인 중 한 명이 고개를 돌리면 남은 한 명은 바라만 봐야 한다. 들을 사람이 없으니 말을 할 수 없고 그렇게 관계는 상처를 가린 밴드처럼 겉으로만 멀쩡하다. 안에는 곪아가는 줄 모르고. 그게 터질 때쯤이면 이미 치료하기 늦어진다. 그 시기를 맞이하면 끝이라는 매듭을 지었다.




그 날은 아빠의 첫제사였다. 제사 자체에 별다른 감정은 없었다. 그러나 이유 모르게 예민했고 기분이 나빴다. 원인은 야근이나 아빠에 대한 감정 때문일 수도 있고 제사 준비에 고생한 엄마에 대한 미안함일 수도 있다. 그때 전화가 왔다. 여자 친구였다. 그때 여자 친구는 친구와 만나고 있었다. 내가 이름만 알고 있던 분이었는데 여자 친구는 소개해주고 싶었는지 통화를 넘겼고 인사하라고 했다. 나는 "안녕하세요"라고 말했다. 내가 생각해도 내 입밖에 나온 목소리는 퉁명스러웠다. 핸드폰 넘어 목소리는 밝고 친절했는데 나와 너무 대조적이라 지금 생각하면 미안한 감정이 앞선다. 언젠가 만난다면 사과해야지.


그날 밤 음복까지 마치고 핸드폰을 확인했다. 채팅창에 보이는 여자 친구의 말투는 사뭇 달랐다. 무척 건조했다. 한 문장의 답변과 맞춤법이 완벽한 존댓말까지 핸드폰 넘어 거리감은 우리가 숨 쉬고 있는 공간보다 멀어 보였다. 난 본능적으로 무언가 잘못됐다는 느낌을 받았다.

문득, 헤어질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때 내게 물었다. "그녀가 없으면 죽을 것 같은가" 같은 그런 질문이 아니다. 만약 그녀와 헤어진데도 나는 살아갈 것이다. 이전보다 행복하지 않을지언정 살아갈 거다. 그러나 살아가는 동안 그녀 같은 사람은 못 만난다. 그녀 같은 사람은 그녀뿐이다. 그게 두려웠다.


답이 정해진 문제를 맞이하면 풀이를 쓰는 과정은 꽤 명확해진다. 어떻게든 답에 맞추면 된다. 내가 정한 풀이 방법은 그때의 내 감정을 솔직하게 써 내려간 것이다. "나는 제사 때문에 예민했고 그래서 친구분에게 그렇게 말했다"가 주 골자였다. 그 외엔 답장이 없더라도 이런저런 이야기를 평소처럼 남겼다. 자는지 안 자는지, 답장이 오고 안 오고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 순간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게 전부였다.


조마조마한 밤이 끝나고 아침이 밝았다. 그녀보다  일찍 일어난 건 행운이었다. 아침에 있는 일도 부랴부랴 톡으로 남겼다. 얼마 뒤 그녀가 일어났는데 반응은 무척 긍정적이었다. 누나답지 못했다는 사과와 함께 고맙다고 말했다. 나도 그녀의 말에서 고마움과 미안함을 느꼈다. 그녀의 기분을 퉁명스럽게 만든 건 나였기 때문이다. 사실 그녀가 그렇게 말하게 하는 것 자체가 내 실수다. 다행스럽게도 그날 밤의 다툼 아닌 다툼은 잘 마무리됐다. 우리는 곧 평소처럼 깨를 쏟아냈다.




삶은 영화나 드라마가 아니었다. 다른 사람의 마음을 설명해주는 내레이션도 없고 다툼 끝에 언제나 해피엔딩을 맞이할 순 없다. 말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은 내 맘을 모른다. 모르지만 아는 척을 하거나 상황을 미뤄 행동의 이유를 유추해 볼 뿐이다. 거기서 오해가 생긴다. 오해는 때때로 다툼으로 번진다. 그 과정에서도 서운함이 밀려온다. 말하지 않아도 내 마음을 알아줬으면 하는 마음이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사람의 입은 먹는 기능 말고 말하는 역할도 탑재되어 있다. 누군가는 말을 먼저 꺼내야 하고 오해도 풀어야 한다. 연인 사이에서 둘 중에 한 명만 그 역할을 할 수 있다면 나는 말을 하고 알아주는 쪽을 하고 싶다. 그러면 상대도 답변이 올 것이고. 그러다 지치면 서로 위치를 바꾸면 될 일이다. 그녀랑 만나보면 잘 맞는 부분이 바로 이 대목이다.


감정과 행동은 분리되야한다. 감정은 내가 가질 것이지 다른 사람까지 가져갈 필요는 없다. 그 감정이 나쁜 것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연인은 행복을 더하기 위해 만나는 거지 불행을 나누려고 만나는 건 아니니까 말이다. 그녀와 불행을 나누고 싶지 않다. 그리고 그녀를 기분 나쁘게 해주고 싶지도 않다. 나는 퉁명스러운 여자 친구보단 평소의 그녀가 더 좋다. 잘하자. 여자는 남자하기 나름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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