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만과 편견> Review
가장 좋아하는 영화가 무엇이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한다고 망설임 없이 대답하는 영화 두 편 중 하나가 바로 키이라 나이틀리 주연의 <오만과 편견>, (2005)이다. 같은 영화를 몇 번씩 반복해서 보는 것을 좋아한다. 시와 영화는 압축적이고 다차원적이라 늘 다른 면으로 다가온다. 백 번을 보아도 백 번의 가르침을 주는 영화에 대해 얘기해보고자 한다.
심리학을 공부하시는 어머니가 어릴 적, 친구 관계로 고민하던 나에게 해준 이야기가 있었다.
“너에게 특별히 잘못한 것도 없는 사람이 괜히 미울 때가 있는데, 그건 네가 그 사람과 아주 닮아있기 때문이래. 거울을 보는 것 같아서 불편한 거지. 심지어 네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 너의 모습, 그래서 너는 숨기고 싶어 하는 모습을 상대방이 적나라하게 드러낸다면, 이유 없이 싫고 미워질 수 있대.”
영화의 주인공 엘리자베스와 다아시는 많은 부분에서 서로 닮아있다. 엘리자베스는 다아시에게 편견을 가지고, 다아시는 오만한 모습을 보인다. 하지만 오만과 편견은 한 끗 차이이며 뗄 수 없는 관계이다. 그렇기에 그들은 상대방뿐만 아니라 자신도 오만하며 편견을 가지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엘리자베스는 똑똑하다. 똑똑하기에 경계심이 많고 똑똑하기에 따지고 들기를 좋아하는 냉소적 면모가 크다. 또한 그녀는 이상주의자이다. 높은 기준을 품고 살아간다. 집안끼리의 조건을 바탕으로 결혼을 하는 중세 배경에서, 진정한 사랑을 꿈꾸며 사랑이 아니면 결혼을 하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그런 그녀에게 무뚝뚝하고 낯가리는 성격의 다아시는 매력적인 첫인상을 주지 않았다.
그들은 본능적으로 너무나 닮아 있는 상대의 모습에 강렬한 존재감을 느끼지만, 쉽사리 가까워지지 못한다. 다아시는 오만했다. 자신이 낯선 이들과 어울리는 재주가 없고 사교적인 성격이 아니지만 노력하지 않는다. 엘리자베스는 다아시가 쑥스럽고 말주변이 없는 사람일 수도 있는데 그를 직접 알아가기보단 다른 외부적인 요소들로 그를 판단해버린다. 그의 딱딱한 표정이라든가, 그가 지나가듯 말한 몇 마디의 말들, 사실인지도 모르는 그에 대한 소문들로 말이다.
영화는 섬세한 여성 작가의 문체와 분위기를 아주 잘 담아내고 있다. 사람이 가득한 무도회에서 인물들이 서로를 지켜보고 마음을 키워가는 미묘한 시선들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있다. 하지만 일인칭의 시점은 아니다. 영화는 관찰자의 시점에서 그들의 섬세한 감정 교류를 그려내고 있으며, 이로 하여금 우리는 섬세한 감정에 휩싸이기보단 이성의 섬세한 성찰 공간을 마련하게 된다.
중세 시대의 시골 영국이라는 배경을 이보다 더 자연스럽고 아름답게 녹여낼 수 없을 것 같다. 또 하나, 이 영화를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바로 음악이다. 아름다운 피아노 선율을 중심으로 풍경과 어우러지는 영화의 음악은 탁월한 존재감을 발한다.
남에 대한 경솔한 판단은 편견이며 오만이다. 다아시는 무뚝뚝한 말투로 이야기한다. 자신은 남들의 잘못과 어리석음, 자신에 대한 모욕을 용서하기가 어렵다고. 사람에게 한 번 돌아서면 그것으로 끝이라고. 그러나 모든 관계가 늘 자신의 의지대로 되는 것은 아니다. 용서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한 사람도 아무리 미워하고 싶어도 미워할 수 없을 수도 있고, 냉정하고 단호한 끊음보다 용서와 포용이 더 위대할 수도 있다. 너무나 쉽게 단정을 짓는 다아시의 모습은 엘리자베스에게도 있다.
자신이 보기에 볼품없고 고리타분해서 청혼을 거절한 남자와 자신의 사촌이 그와 약혼을 하게 되었다고 전하자 그녀는 기뻐하는 사촌에게 축하한다는 말보다 의문을 던진다. 그 사람은 이상한 사람인데, 왜 그러하냐고. 그러자 친구는 대답한다. 모두가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을 할 수는 없다고. 자신은 늙었고 돈이 없으며 이미 부모님에게 짐이 되고 있는 처지인데, 자신의 집과 보호막이 생기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한 일이라고. 그러니 감히 네가 마음대로 판단하지 말라고.
자신의 기준만으로 누군가를 판단하고 단정 짓는 두 사람은 참 비슷하다.
반대라서 끌릴 수도 있지만, 어쩌면 반대인 사람의 모습 속에서 나와 닮은 모습이 있기에 끌리는 것일 수도 있다. 사랑하는 사람, 끌리는 사람에겐 어딘가 꼭 나와 비슷한 구석이 있기 마련이다. 다아시는 저항할 수 없는 끌림으로 엘리자베스 곁에 맴돌게 되고, 그녀에게 고백하게 된다. 하지만 너무나 뜬금없는 고백에 엘리자베스는 당황하고, 다아시에 대한 남들의 이야기를 들어 그를 잔뜩 오해한 상태로 상처를 남기며 거절한다. 그에게 진실을 묻지도 않고, 진심을 묻지도 않은 채로.
상처 입은 다아시는 오해를 풀기 위해 자신의 이야기를 적은 편지를 그녀에게 남긴다. 그 편지를 통해 처음으로 엘리자베스는 자신이 만들어 낸 다아시가 아닌 진짜 다아시를 알아가기 시작한다. 우연히 그의 집을 방문하게 되어 그의 가장 내밀한 모습을 보고, 자신의 가족을 도와주는 그의 모습을 본다. 그녀가 가진 편견과 다른 진짜 그의 모습들을 보며 경계심 없이, 오해 없이 그를 알아가고 그와 대화한다. 그리고 그 둘이 얼마나 서로 닮아 있으며, 다아시의 진심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
이 과정은 단순한 우연으로 가능했던 것은 아니다. 그녀의 오해와 그 오해를 만든 자신의 잘못을 깨달은 다아시의 노력으로도 이루어진 것이다. 낯선 이들에게 더 친절하려고 노력하고, 먼저 다가가는 방법을 연습하고 지긋이 그녀 곁을 지킨다. 그가 몰상식하고 촌스럽다고 생각한 그녀의 가족들을 돕기도 하면서 말이다.
서로를 사랑함을 부정할 수 없게 된 그들은 더 이상 돌고 돌지 않고 솔직하게 서로를 향해 손을 뻗고, 손을 잡는다. 나 자신이 늘 나인 듯 친밀하고 좋은 것만은 아니다. 나는 나를 버릴 수 없기에 나를 견디며 살아야 한다. 그 순간들에 나와 아주 비슷한 누군가가, 내가 사랑하기 힘들었던 나의 모습까지도 사랑해준다면 참 온전해지지 않을까. 그 사람을 겪고 그 사람을 바라보며 나를 기꺼이 바꾸어 나간다면. 우리의 삶이 스스로를 사랑하는 과정이라면, 나와 비슷한 누군가와 동행할 수 있음은 축복이겠다. 그러니 내가 불편하고 싫은 그 모습과 오해 없이, 편견 없이 대화하는 일부터 시작하면 될 것이다. 그 사람을 오롯이 그 사람으로서 알아가는 일부터. 서두르지 않고, 경솔하지 않게. 하나씩.
영화를 읽어 내고 써 내려가다.
Film X Ulim, FilUm
by Uli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