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도 가도 잡초가 우거진 잡목 숲 같았다

by 민진



"여보세요”
“엄마”
“왜”
“친구가 카드 빚이 불어나 큰일 나게 생겼는데, 내 적금통장을 깨 가지고 빌려주면 안돼."
“얼마인데”
“이백 만원”
“그러지 말고 부모님께 알려서 도움을 받게 해”
“그럴 부모님들이 아니야”
“사정을 잘 몰라서 그럴 거야”
“아니라니까, 친구가 우울증이라고 하자, 네가 무슨 우울증이냐고, 피해자 코스프레한다고 했다더라니까"
“나는 네가 상처 받을까 봐 더 걱정이 되는데. 아빠 생각은 어떨까”


저녁에 남편에게 얘기했더니 딸에게 전화해 이것저것 물어보더니, ‘네가 그렇게 도와줘서 해결될 문제가 아닌 것 같구나, 그 친구 아버지 전화번호 알아서 알려주라’며 전화를 끊었다. 딸이 나에게 살짝 전화를 해서 이번 한 번만 더 도와줄 테니까. 친구 부모님께 연락하지 말아 달라고 사정을 한다. 언니도 도와줘야 된다고 하던데 하면서.


우리 부부는 백 단위가 넘어가는 돈이라면 부모님께 알리고 도움을 받아야 된다고 생각한다. 지난 추석에 집에 가서 어땠으면 말할 엄두를 못 내고 혼자서 쩔쩔맸을까. 생각하면 짠하지만 혹여 내 딸 부터 챙기는 이기적인 엄마다. 우리 딸이 귀중하면 남의 딸도 소중한데 팔이 안으로 굽는 것을 어쩔 수 없다. 학생이 카드빚이 그렇게 불어났다면 얼마나 마음이 힘들었을까. 갚으려고 노력해 보다가 안 되어서 벌어진 상황일 텐데.

십칠팔 년 전이던가. 우리도 카드빚 돌려 막기를 하다가 더 이상 어떻게 못하고 딱지까지 붙였었다. 그때 그 장면 속에 고스란히 노출된 우리 아이들. 집 전세를 빼어 갚고 육백만 원은 아는 분이 빌려줘서 급한 불을 껐다. 그때 빌려 쓴 돈을 원자만 작년에 갚았으니 미안하고 고마울 뿐이다. 작은 딸이 우리도 어려울 때 도움받았는데, 도와 야지요 하면 할 말이 잃는다.

서울에 사는 큰딸이 작년 연말에 내려왔는데 무슨 이야기 끝에 하는 말 “엄마, 난 돈이 없는데 월드비전에서 이백오십만 원 후원했다는 영수증이 오니까 마음이 묘했어요.”한다. 대학교를 겨우 졸업하고 직장에 다니면서 학생인 동생 도와주랴, 창업지원금 갚아나가랴, 집세 내고 살랴 힘든 시간을 보낸다. 그 와중에 영어는 중학교 때 배워야 한다고 월드비전을 통해 결연을 맺고 어려운 친구의 학원비를 지원하고 있었나 보다. “나도 도움받으며 자랐으니 나누며 살고 싶다”는데 장하다거나, 잘한다거나 하는 말보다는 ‘좀 더 안정이 되어 갚으면 안 될까’하는 말이 목까지 올라오는데 꿀꺽 삼켰다.


잘 아는 분이 학원을 시작하면서 “학원비 안 받을 테니까 큰 딸을 영어학원에 보내라”라고 했었다. 딸은 중학교 삼 학년 때 육 개월 영여 학원 다녔는데 그것이 큰 도움이 됐다고 말하곤 했다.

아이들이 마음의 부담을 너무 가지고 살아가는 것은 아닌지. 우리 부부가 진 빚이 고스란히 아이들에게 떠 넘겨진 것 같아서 가슴 한쪽이 저려온다.


가난한 집에서 아이들 넷을 길렀다. 셋째는 의료보험 혜택도 받지 못하고 태어났다. 힘든 시간들이었다. 어떻게 살아왔는지. 내가 믿는 하나님이 아니었으면 견뎌낼 수나 있었을까. 아득함 속에서 길이 있기나 한 걸까? 하는 의문이 들곤 했다. 가도 가도 잡초가 우거진 잡목 숲 같았다. 그곳에 길을 내주고 용기를 잃지 않게 한 것은 우리를 도와준 분들이지 않을까. 도움의 길에서 자란 아이들이 길모퉁이 한 지점을 덧대어 나가고.


길은 길로 이어지고 그 길로 나아가는 삶에 희망이 엿보인다. 언젠가는 딸아이의 친구도 길의 한 지점을 이어가며 예쁜 인생 열어 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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