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 가까이하려고 애를 쓴다. 뼈가 약해지면 여기저기 부딪히기만 해도 골절이 된단다. 얼마나 힘들까 하는 생각에 걷는 것과 해바라기를 부지런히 한다. 나이 들어 편안한 마음으로 무상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것도 준비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강 둔치 길을 걸어 학교로 향한다. 느지막이 있는 수업을 들으려니 바쁠 것도 쫓길 것도 없이 한가로운 마음으로 거닐기로 한다. 늦깎이 학생의 즐거운 시간이다. 바늘꽃은 아직도 제 빛깔을 품고서 바람에 흔들리며 환하다. 길 따라 억새의 흔들거림도 하얗게 빛이 바랬다. 하늘과 맞닿을 듯 날개 달고 올라가려는 몸짓 같기도 하다.
모자를 쓰고 그 위에 보자기를 두른 아주머니가 기다렸다는 듯 반가워한다. 억새밭이 언제부터 있었느냐며 멀리 가지 않고 이곳으로 와야겠단다. 오래되었다고 하자 모르고 지낸 것이 아쉽단다. 작은 도시지만 구석구석 모르고 지내는 것들이 많다. 그러면서 나에게 왜 모자를 안 썼느냐고 걱정을 한다. 뼈가 약해져 팔 걷어붙이고 있다고 하자, 자기는 농사를 지어서 뼈는 튼튼하다고 한다. 얼굴이 한번 타거나 기미 잡티가 생기면 없어지지 않는다고 모자를 쓰라고 당부를 한다. 나보다 서너 살은 많아 보인다. 산에 오르거나 운동할 때 눈만 내놓는 사람들을 이해가 안 된다며 이야기하곤 했는데 부추김을 받는다. 그냥 웃으면서 알겠다고 한다.
억새의 흔들림과 강물의 수런거리는 소리는 햇빛 속을 걷는 나에겐 음악이 된다. 강 위로 하얀 덩어리들이 떠 있다. 봄이 채 오기도 전에 자취를 감췄던 백조가 노닐고 있다. 그 옆에는 저 어미에 저런 새끼가 있을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어두 칙칙한 새끼들이 떠 있다. 전에 백조는 마음씨가 참 곱네! 어떻게 오리들과도 잘 어울리나. 했는데 알고 보니 어린것들이었다.
자식들만은 부부 안 닮고 더 뛰어나기를 원했다. 공부와 사회성 유머와 융통성에서. 몸도 튼튼하기를 원했는데. 아빠의 위와 장을 그대로 닮았는지 건듯하면 장에 탈이 나고, 체한다. 나를 닮아 우유부단하여 결단이 부족한 것들을 보면 마음이 아프다. 옛 어른들의 ‘씨 도독은 못한다는 말’이 목에 가시처럼 걸린다. 외모도 안 닮은 것 같은데 어느 순간 보면 닮아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는 잘 몰랐다. 젊은 엄마들이 아이들 손잡고 다니는 것을 보면 그렇게 닮았는지 놀라울 정도다. 그때마다 나도 아이들과 저렇게 닮았나 보네 새삼 깨닫게 된다. 『아버지 당신은 카피되고 있습니다』라는 책 제목처럼 속도 겉도 복사되고 있는지 모른다.
백조가 닮지 않은 새끼들을 애지중지 기르는 것들을 볼 때에 유전자 속에 자식을 잘 기르라는 명령이 들어 있겠지만, 어느 때인가는 자신을 닮아 어여쁘게 변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지 않을까. 인생도 완전한 것은 아니다. 완성을 위하여 나아가는 것일 뿐. 생을 마치는 순간까지 진행형이니 이제라도 좋은 모습을 각인시켜 나갈 수 있을까.
풀리지 않는 봄 날아갔다가 늦가을 날아오는 철새는 겨우내 강물 위에 떠서 새끼를 키우고 먹이활동을 한다. 긴 목을 물속으로 집어넣으면 물구나무서기가 된다. 고고하고 우아하다고 생각하는 백조도 살기 위해 엉덩이를 하늘로 추켜세운다. 창조 질서 안에 있는 것들이 먹지 않고 살아가는 것들이 있던가. 우리도 살아가기 위한 먹이활동이 사회생활이라고 한다면 너무 측은한가.
백조도 오리도 벌써 찾아온 겨울 강을 눈앞에 둔 남강 오솔길을 들꽃과 마주하며 걸었더니 만 걸음이다. 뼈가 조금 튼튼해졌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