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만의 쉼터

추운 날의 따스한 차 한잔

by 민진


감기 기운이 있는지 머리가 지근거린다. 찬바람이 허리뼈 속으로 들어온 듯 한기가 느껴진다. 몸이 차가운 편이라 서둘러 내복을 챙겨 입고 옷도 두껍게 입는다. 얇게 입었더니 탈이 난 것 같다. 오후 수업이 휴강이라서 집에 일찍 올 수 있어 다행이다. 으슬으슬 찬 기운을 떨쳐보려고 생강에, 파뿌리와 대추를 넣고 끓인다.


영어 발표 시간인데 실력이 없으니 겉모양이라도 내려고 하다가 그만. 원어민 교수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여, 다르게 알고 있었다. 중요점만 가지고 살을 붙여 영어로 이야기를 해야 한다니 머릿속이 하얘졌다. 당황하여 준비해 간 것도 제대로 못했다.


아들에게 도움을 받아 작성한 '도시락'이라는 마인드 맵 원고에 초콜릿 과자가 나와서 학생들과 한 개씩 나눠먹으려고 사갔다. 영어가 서툴러서 무슨 말인지를 못 알아들었나 보다. 선생님께 쪽지를 보내서 끝나고 나눴다. 생각한 대로 되지 않는 시간. 다음 주 기말시험으로 한 학기를 마무리한다. 다행이기도 하고 아쉽기도 하다. 배운 것이 있기나 한 걸까. 마음이 복잡하다 보니 머릿속도 어둡다.


따끈한 차 한 잔에 몸을 녹이고 뜨거운 물주머니를 허리에 대고 찬 기운을 몰아낸다. 잠을 푹 자고 났더니 땀이 솟는다. 괜찮아지겠구나, 싶어 일어나 과제를 한다. ‘한약과 건강’에서 약초이야기를 한 가지씩 적어 보내라 해서 책을 빌려왔다. 내용이 짧은 것을 찾는다. 그러면서도 의미 있는 것이기를 바라며 책을 뒤적거린다. ‘포공영’이라는 약초 이야기를 읽어보니 이것이다 싶다.


십일월 초 건강검진을 받았는데 결과가 왔다. 유방촬영 검사 결과 ‘양성 석회화’ 소견이 관찰된단다. 암과의 관련성은 낮은 양성 소견이나, 변화의 유무를 살펴보기 위해, 일 년 뒤 추적 관찰하라고 한다. 칼슘 알갱이들이 뭉쳐 있는 것이라는데 치료방법이 없다니 신경 쓰인다. 친구가 유방암 수술을 했다. 초기라서 방사성 치료만 여섯 주를 해야 한단다.

나이 대가 그런가. 주변에서 이런 소식이 들려오면 남의 이야기로 들리지 않고 내 이야기인양 몸이 움츠러든다. 약초 책에 민들레가 유방암에 좋다기에 그 이야기를 적어 보낸다. 봄이 오면 민들레로 차를 만들어야겠다면서.


머리가 아득하고 마음도 무겁고, 눕고만 싶다. 먹는 알약들이 늘어간다. 의사가 처방해 준 약을 먹지 않고 일 년을 버텼더니 혼이 났다. 어떤 책에는 혈압 약 먹지 말라 하는데…. 무엇이 옳은지 분간이 안 되어 혼란스럽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의지대로 할 수 있는 것들이 줄어드는 것 같아서 슬프다. 마지막 가는 날을 알고 산다면 가 달라질까. 더 열심히 살까. 아니면 얼버무릴까. 몸이 힘겨워질 때마다 한 번씩 해보는 생각이다.


많은 것을 잘하려는 욕심을 내려놓으면 모든 것에 감사가 깃든다. 작은 것 하나하나가 귀해진다. 너무 잘하려 하지 말고 하는 만큼만으로도 만족하는 자족을 배워야겠다. 느지막이 배우느라 몸보다 마음이 추운 날, 따끈한 차와 한 칸의 방이 있다는 것이 옹달샘 같은 작은 나만의 쉼터이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