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들을 마주하고 누웠다. 무수한 별빛들이 쏟아져 내린다. 신랑의 팔베개가 딱딱하다고 느낄 즈음 잠이 들었나 보다. 살포시 내리는 이슬이 삼베 홑이불을 적실 때쯤 사위가 환했다. 한여름 밤하늘을 이불 삼고 잤던 기억이 피어오른다
아! 나도 신혼이 있었구나. 걷잡을 수 없이 지나쳐 왔던 삶들이 물꼬가 트인 듯 머릿속 풍경이 되어 지나간다. 신혼여행 끝에서 들른 시댁에서의 첫 밤이었다. 어머니는 난감해했다. 아래채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지내고 안방 옆은 세를 주었고 더운 부엌방밖에 없다는 것이다. 더 미안해하지 말라고 부러 아래채 옥상에서 잔다고 했다. 돗자리를 깔고 이부자리를 펴고 누웠는데 낯설어서인지 둘이 별말이 없다. 한참 뒤 여기서 자도 괜찮겠느냐고, 미안한 듯 몇 번이나 물었던 기억이 있다. 아침은 쉬 밝아오고.
아이들이 태어나자 내 팔을 내주어야 했다. 갓난쟁이를 젖을 먹이거나 안고 재울 때는 팔이 가장 좋은 베개 노릇을 했다. 그렇게 네 아이를 키웠다. 젖무덤을 찾아야만 잠들던 아이들이 어느 사이 커서 내 키를 훌쩍 넘고 삶터를 찾아 흩어졌다. 내 팔이 단단해진 이유가 거기에 있었을까.
큰딸이, 어렸을 때 자기도 엄마 옆에 있고 싶어서 쳐다보면, 엄마는 동생들 차지가 되어있고 남는 곳이 발치여서 거기에 누웠다고 했다. 다 큰 다음이니까 할 수 있는 말이다. 자기 안에서 소화가 되고 감정 정리가 되었다는 뜻이기에 눈물이 핑 돌았다. 딸은 삼 년 터울로 남동생을 보았다. 그 뒤로 연년생들이니 치인 녀석은 치이고 관심받는 녀석은 받고 골고루 사랑을 나누어 가질 수 없었다. 그래도 큰 딸은 삼 년을 온전히 엄마 아빠 사랑을 독차지했으니 그것으로라도 위로를 받아야 하지 않을까.
그 밤 별빛이 내릴 때 아이들이 하늘에서 우리 허리로 들어왔다고 하면 억지일까. 한뎃잠을 자도 좋으니 그 시간대로 돌아가는 것이 허락된다면 그 순간으로 갈 수 있을까. 젊은 시절로 돌아가 무엇을 제일 하고 싶으냐고 묻는다면. 유채꽃 환하게 핀 길을 꽃보다 예쁜 아이들 손잡고 날마다 걷고, 꽃 져 신록이 우거지면 하얀 모래톱에 가서 조개를 캐고 발자국 남기면서 모래 놀이하고, 강 건너 산이 울긋불긋해지면 가을바람 따라 이리로 저리로 거닐어 볼 텐데.
시간은 물처럼 흘러가 버렸다. 버겁고 힘들다고 인상 쓰고 살더니 얼굴에 주름살만이 세월의 더께로 앉아 지난날의 나를 반추해내고 있다. 마음 한편엔 스산한 바람이 분다. 더 복되고 아름다운 날들로 만들지 못한 것에 후회스러움이 묻어나고 아프다. 때론 삶이 버거울지라도 많이 웃고 너무 힘겨워하지 않는 가벼운 마음으로 살 일이다. 인생은 고통스러워해도 지나가고, 환한 웃음을 짓고 살아도 가는 것이니.
크리스마스마다 산타의 선물을 내복으로 준비했었다. 포장을 뜯고선 아이들 얼굴에 번지던 실망의 빛들. 아들이 유행하던 팽이를 갖고 싶다고 기도하자 어쩔 수 없이 준비해주던 부모였다. 다시 또 성탄은 다가온다. 지금이라고 별로 달라진 것도 없다. 다만 마음만으로도 만족하는 법을 배워가는 중이다. 가난한 이가 하나님을 볼 수 있다는 말씀에 기대어 볼뿐. 다시금 아이들을 키울 수 있게 된다면 철없는 친구 같은 엄마가 되고 싶다. 뭐라도 다 해 줄 수 있을 것 같은 마음이 커다란 부자 엄마로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끝도 없이 피워내고 팔베개도 많이 해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