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좀 찍어 주세요' 한다고 친구들이 난처해한다. 그림 전시회를 유치원에서 온듯하다. 여섯 살쯤 되어 보이는 사랑스러운 남자애다. 교사들이 그림 앞에 서 있으면 친구들과 사진을 찍어준다고 했는지 마음이 가는 그림앞에 아이들이 옹기종기 서 있다. 내가 “찍어주면 되지” “어떻게 줄 방법이 없는데” “보여주면 되는 걸”
"사진 찍고 싶어?”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 그럼, 그림 앞에 서봐! 준비! 웃어 하자 아이가 활짝 웃지는 않지만 쑥스러운 듯 귀엽게 웃는다. 셔터를 누르고 나서 자, 사진 봐. 하고 내 키를 낮춘다. 잘 나왔어? 고개를 끄덕이고는 나비처럼 선생님들 쪽으로 폴짝폴짝 뛰어갔다. 아이들은 강물에 반짝이는 햇살이다. 모든 순간이 한 편의 동화가 된다.
여럿이서 왔기에 순번을 기다려야 하고 선생님의 말과 친구들 리듬에 맞추어야 한다.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은 가정을 떠나서 사회생활의 시작이며, 질서와 양보와 배려를 배우는 곳이지 않을까. 아이는 엄마 아빠와 다니면 온통 주인공이었을 것이다. 모르는 사람에게 사진을 찍어 달라는 것은 자존감이 높고 사랑을 많이 받고 있다는 증거일 수도 있다.
유치원 교사 시절에 아이들과 다녀보아서 자연스레 사진을 찍어줄 수 있었을까. 그때에는 단체사진을 찍고 재미있거나 특이한 것들을 중심으로 찍었다. 요즘은 휴대폰에 사진을 담아 홈페이지에 올린다. 누구 하나 더 올리게 되면 그 아이만 사랑한다고 따지고 들지 않을까. 교사들도 사람이라 정이 더 가는 녀석들이 있을 수 있지만, 마음을 따라가다가는 큰일이 날지도 모른다. 어느 쪽으로도 치우치지 않기를 바라는 곳이 유치원이 아닐까 생각하니 웃음이 나오고 살얼음판도 생각난다.
근무하는 동안에 사고가 있었다. 집으로 돌아가기 전 미끄럼을 타던 아이가 떨어졌다. 팔의 생장점을 다쳐서 팔이 자라지 않을 수도 있다고 했다. 교사들 셋이서 아이들 칠팔십 명을 담당하고 있었기에 끝마친 아이들까지 돌아볼 여력이 없었다. 아빠가 아이에게 공부 중에 다쳤는지 뒤에 다쳤는지를 물어보았다. 병원에서 행정 일을 하던 분이었다. 얘들하고 유원지도 많이 다녔는데, 일이 터지려면 속절없이 일어나는 모양이다. 높지도 않은 기린 미끄럼틀에서 떨어지다니. 지금도 생각하면 마음이 서늘해진다. 바라기는 의료시설이 좋아졌으니 별 탈 없이 자라 잘 살고 있겠지 하고 바랄 뿐이다.
사진 한 장 보여주고 추억 한 갈피를 들춰보게 되었다. 아이들의 해맑은 웃음이 귓가에 쟁쟁하다. 그 소리가 참 그립다. 우는 아이도 웃는 아이도 싸우는 아이도, 아빠가 외국인이었던 존도. 기차를 좋아하여 할아버지와 전철만 보러 다니던 성훈이는 지금은 어른이 되어 아빠가 되었겠지. 국가 대표 중에 지역과 이름이 같은 선수만 나와도 혹시 그때 만났던 아이일까 궁금하기도 했다. 추억 속의 아이들 한 명 한 명이 기억 속에서 빠져나와 나를 보고 웃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