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의 사랑의
방식이 있으니
남의 방식에 기웃거리지 않으리라
그저 내
사랑에 성실하리
내 무던함을
받아줌에 감사하고
어제처럼 오늘도
서로 기댈 수 있는
언덕으로 살리」
남편으로부터 시 한 편이 도착했다. 괜찮다 싶어서 어디서 봤댜? 뭘, 내 글 인디! 완전 멋지다. 시인이 따로 없네. 하믄.
집에 가니 마카롱 한 개를 준다. 두 개는 막내가 먹었다며. 달콤하고 부드러운 것이 입안에서 살살 녹는다. 색깔은 은은한 하늘색과 흰색의 중간색이랄까. 근데 웬 거야. 묻지 마. 뭔가 수상하다. 당신은 마카롱이 뭔지 알아? 왜? 그냥! 요즘 젊은 친구들이 즐기는 거잖아. 프랑스 과자. 가격이 만만치 않는데도 먹는 이유가 있데요. 삶은 팍팍하고 취직은 잘 안되니 뭔가 위안 거리가 필요한가 봐요. 앞날에 대한 불안을 해소하려는 몸짓들인가. 앙증맞고 색깔이 화려한 마카롱 몇 개와 커피 한잔으로 위안 삼고 뿌듯해하는지도 모르죠. 먼 희망보다는 가까운 희망에 기댄다고 해야할까.
남편이 묻는 말에 대답을 피하는 것은 뭔가 언짢았다는 표현이다. 아마 내일쯤 이야기해 주겠지 하며 지난다. 다음 날 차를 타고 가면서 어제 마카롱 뭐예요. 누구를 만나서 마카롱 가게에 갔는데 수제로 만들어 다 팔리고 세 개가 남아 있었다고 한다. 세 사람이 갔으니 차와 그거라도 한 개씩 맛보려고 계산을 했는데 어떤 이가 ‘사모님께 사랑합니다’ 하면서 주라고. 하더란다. 아마 내가 마카롱을 못 먹어 봤을 거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그 상황이 훤히 그려진다. 보내준 시가 너희들만 사랑하고 사는 것 아니니까. 로 해석이 되었다.
저녁에 남편 휴대폰 점검에 나섰다. 그런 무색함을 안겨준 이가 누구인지 궁금해서다. 오래 걸리지도 않았다. 짚이는 사람 중에서 두 번째로 두드리니 나에게 보낸 시가 보였다. 딴마음이 있어서 그런 것은 아니라는 것은 안다.
남편 몰래 전화기를 수색했지만 안 할걸. 후회가 되기도 했다. 사람의 심리가 묘해서 두고 보자 하는 무섭지도 않은 감정이 들기에. 우리보다 젊기도 하지만 그런 행동들이 상대방에게 어떤 느낌을 줄는지 헤아리지 못하는 것을 뭐라 할 수도. 아니면 장난일 수도 있겠지. 남편은 한 줄 시로 맞대거리를 한 것이다.
이쁘고 앙증맞은 마카롱이 좋아지지가 않을 것 같아서 못내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