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랫집에 국화 화분을 나누었다. 꽃망울이 몽실몽실 맺혀 물을 자주 주어야 하는데 말리는 것이 안타까웠다. 물을 주고 싶어도 개집이 버티고 있어서 함부로 주지도 못한다. 보다 못해서 호스를 이용하여 주고, 비도 오더니 꽃송이들이 환했다. 날이 추워지자 처마 밑으로 들여놓은 것을 보았다. 여전히 물은 마르고.
애가 탔다. 저대로 두면 뿌리까지 말라서 내년에 싹이 나지 않을 텐데! 물기를 머금지 못하면 꽃이 빨리 시든다. 내어준 것이니 물을 주라고 말하기가 여간어려운 것이 아니다. 며칠 뒤에 아주머니를 만날 일이 있어서 화분을 달라고 했다. 안으로 들여서 분재를 만들어 보려 한다고 핑계를 대었다. 화분을 받아 오자마자 물을 흠뻑 주었지만 얼른 살아나지 못했다. 시들 점을 넘겼나 걱정이 되었다. 그 뒤로도 물을 몇 차례 주면서 지켜보았다. 아주 어린 이파리들이 생기를 찾는 것이 보였다. 잎들이 짱짱해지기를 기다렸다. 삼주 정도 지나니 생생 해지는 것은 생생하고 먼저 나왔던 잎들은 말라갔다. 여린 것들은 살리고 오래된 잎들은 시드는 것을 보면서 자연의 섭리가 깊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진 꽃송이들을 자르고 텐트 안으로 들여 겨울나기를 시킨다.
친구처럼 지내는 언니가 집을 지어 이사를 했었다. 국화전시회에 가서 조그만 국화분재를 선물했다. 다음 해에 땅에다 심었더니 국화가 예쁘게 피었다고 했다. 몇 년 뒤 국화는 풍성해지고 어린순들을 따와서 삽목을 했다. 꽃을 피워내기까지 조바심쳤다. 생장점을 따 주었더니 모양도 제법 그럴싸하다. 분재를 만들어 보고 싶다. 몇 년씩 키우고 수형을 잡고 정성을 기울여야 한다지만 도전해보고 싶다. 꽃 색은 예쁜 주홍으로 피어나 자줏빛으로 변해간다. 다시 내게로 와서 한 달여 만에 국화는 물의 발자국으로 살아난 것 같다. 물길이 지나기를 몇 번인지 모른다. 버티던 실뿌리들이 한 모금씩 한 모금씩, 잎으로 줄기로 물기를 보냈을 것이다.
칠레의 아타카마 사막은 비가 오지 않는, 지구에서 가장 건조한 곳이라고 한다. 이따금 바다의 습기를 가득 머금은 구름이 지나가면 바싹 마른 대지에서 풀과 나무가 움트고, 꽃도 핀다고 한다. 이 사막에서 구름이 지나는 것을 보는 일은 곧 꽃이 피어남을 뜻한다고 한다. 물 입자들이 구름이 되어 사막을 적시며 잎들과 꽃들이 기지개를 켠다. 사막에 꽃등이 내 걸리는 듯.
우리의 삶도 물과 같이 흐르듯, 어루만지듯, 곱게만 살아갈 수는 없을까. 봄나무에 물이 오르고 꽃송이가 머금어지고 잎이 피어나고 열매가 맺히는 것처럼. 내가 지나간 자리에 향기가 스미고 꽃들이 피어나는 자취로. 산다는 것이 만만치가 않으니 늘 초조해진다. 이제까지 나의 발자국은 삐뚤거리지 않았을까. 눈 위의 발자국은 하얗게 자국을 남기며 따라온다. 우리의 삶도 보이지 않는 발자국을 남기는 것인가 싶으니 마음이 조심스럽다. 가지런하고 예쁜 발자국을 남기며 살아갈 수 있다면.
겨울이 들자 화분들을 거실로 방으로 텐트로 옮겼다. 화초들이 마당에서 물과 바람과 햇볕으로 넉넉한 시절을 보냈는데 추운 계절은 식물들에게도 힘겨운 시간이다. 자람을 멈추고 살아남기 위해 가지와 눈에 영양분을 저장한다. 실내로 들여온 녀석 중에 꽃이 계속 핀다. 색색의 꽃잎들이 파르르 하다. 피지 말고 참았다가 봄에 피라고 하고 싶다. 보기에 안쓰럽다. 그래도 우리 집은 꽃이 있는 풍경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