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속으로 들어갔다. 청명한 하늘 아래 햇빛은 따사롭고 조랑조랑 익은 열매들은 어여쁘다. 연약한 줄기마다에 촘촘히 박혀있는 작은 구슬이다. 바구니에 손으로 죽 훑어 내린다. 도로롱 조로 롱 떨어져 미끄럼을 타는 것 같기도 하다. 고운 것들이 알알히 내려와 쌓인다. 보석이다. 보기만 해도 마음까지 이쁜 색으로 물들어간다. 아무런 생각 없이 꽃 마음이 된다. 지난한 것들을 비운다. 새 빛이 들어찬다. 바구니마다 가득 가을이 담긴다. 발그레한 것들이 또르르 웃는다. 마음도 손도 흐뭇하다.
친구의 페이스 북을 본 토종 보리수 마을 대표님한테서 연락이 왔다. 보리수를 팔라고. 팔 것이 어디 있느냐고 한다. 남편이 담배를 피우고 목이 불편할 때 보리수 물 한 잔이면 목이 시원해졌다. 아는 분 있으면 소개해 달라고 부탁한다. 수익성과 건강에 좋다고 교육하여 나무를 나눠주고 키우라는 시간이 열 손가락만큼의 해가 지났다. 약성이 좋지만 판로가 없자 때를 기다리지 못하고 농부들은 나무들을 베어냈다. 제약회사에서 구하려도 잘 구해지지가 않는단다. 수소문한 친구가 일 톤 정도 있는 농가를 소개해주었다. 어쩌면 코로나에 특효약을 만들어 낼지도 모른다는 섣부른 기대감이 얹힌다. 기관지와 천식에 좋은 열매를 구한다는 것은 벌써 임상실험을 거친 것은 아닐까. 우리는 자연에 기대어 살 수밖에 없다. 어서 좋은 코로나 예방약이 나와 불안으로부터 놓여나기를 바란다. 비싼 백신이 아닌 가까이 놓고 먹을 수 있는 작은 빨간 알약 하나로 해결할 수 있다면 좋겠다.
어렸을 때는 보리수 열매가 달랐다. 하나하나 따로따로 열매 자루에 매달려 있었다. 연분홍의 얼굴에 왜 그리 흰 주근깨를 잔뜩 찍고 있는지.
어린날 방 천장을 쳐다보면 파리가 앉았다 일어난 곳에는 무수한 까만 점들이 찍히어 무늬로 굳었다. 푸세식 화장실이며, 소 마구나 두엄은 파리가 나오는 곳이었다. 이름을 붙였다. 보리수도 점순이어서 파리똥이라고 불렀다. 떫은맛이 입을 얼얼하게 했던 내가 알던 보리수가 아니다. 얼마나 예쁘게 숭얼숭얼 달렸는지 가지 하나 꺾어서 매달면 그대로 브로치일 것 같다. 맛도 달크레한 것이 자꾸만 입속으로 던져 넣게 된다. 수입되어온 슈퍼 보리수 열매는 얼마나 큰지 소인국에 온 거인 같은 느낌이랄까. 맛도 싱거웠다. 우리 땅 우리 보리수는 맛도 멋도 다 좋다.
멘델 아저씨가 너무 속상해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육종학이니, 생리학이니, 재배학이니. 다 거기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듯하니까. 내 시대가 올 것이라고 했다던 말이 실감이 난다. 어렴풋하던 것들도 자꾸 들으니 이해가 될 것 같다. 시험을 치르고 친구와 이야기를 하니 헛공부는 아닌 것 같고 삶의 현장에 온 것 같다.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더니 아는 것도 없으면서 알은척하는 이 가벼움. 보리수에 변화가 일어나서 경상대 모 교수님에게 연구를 부탁했다고. 차이가 너무 분명하니까. 이유를 알아야 께름칙한 마음을 벗어 버릴 수가 있었던 것 같다. 검정 교배를 하여 몇 년의 시간이 흘러갔을까.
나뭇가지들을 땅에 묻어 수를 늘린다. 하늘을 마주 보는 나무들로 우뚝 선다. 한번 좋은 변이를 얻으면 그것이 과수농가들의 유익이라고. 자연 돌연변이인 것을 알아냈다. 이전의 것들보다 효능도 월등해지고 세력도 좋아졌다는 것이 판명되었다. 저렇게 많은 열매를 맺게 하려면 앞선 계절에 몇 개의 꽃을 매달았을까. 꽃 한 개에 열매 한 개씩이니 작은 미색 꽃이 피어날 때 꽃향기에 취해보고 싶다. 수줍은 듯 피어난 꽃숭어리들. 가지마다 수 만개의 꽃을 매달아 하늘을 가린다. 땅만 내어주면 알아서 크는 착한 보리수나무. 약을 치지 않아도 벌레들이 내버려 둘 수밖에 없는 무언가가 있나. 별똥이 변하여 뻘 똥이 되지 않았을까. 날개를 가진 것들이 중마를 하느라고 날개가 짓물렀을 것 같은. 질긴 것들만이 우리의 몸에 약이 된다. 민들레도, 질경이도, 쇠비름도. 코로나를 대비한 자연의 섭리는 이미 시작되었던 것일까. 죽을 약 곁에 살 약은 항상 마련되어 있다는 옛말이 생각난다.
친구가 메고 온 가방을 받아 어깨에 둘렀다. 모르겠더니 집에 오느라 보니 무겁다. 어떻게 메고 왔을까. 자기는 괜찮았다고. 조롱조롱한 것들을 씻어 바구니에 바쳐 물기를 뺀다. 고슬 해져야 청을 담을 수 있기에. 유리병을 씻어 놓는다. 오종종한 열매들과 흰색 설탕을 시루떡 앉힐 때처럼 켜켜이 쌓는다. 가득이다. 두세 달 두었다가 색을 비워내어 열매 속에서 나온 고운 색 청을 묽게 타서 마신다.
보리수 그늘 아래서 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