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동화처럼 물들어갑니다. 잎이진 가지 끝에 마지막 장미 한 송이는 여태 발그레합니다. 옥수수의 수술은 추워 보입니다. 열매를 위함이 아니고 옥수수라는 추억을, 얕은 화단에 심은 것 같습니다. 제 역할에 충실했으니 먼 나라로 떠나겠지요. 백합의 마른 대궁들은 이미 잘리어졌고, 땅속에 알뿌리만이 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찬란했던 시간들은 잠시 내려 놉니다.
싹을 올리고 꽃망울을 부풀리고 피어나 한창일 때와 지는 때는 다 소중합니다. 누군가를 알아간다는 것은 모든 계절을 보아야지만 본 것이고, 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화려할 때만을 좋아하는 것은 이기심입니다.
카페 안에서 바라본 거리는 차 소리가 들리지 않습니다. 모두들 숨을 죽이고 살며시 가을 속으로 떠나나 봅니다. 고즈넉함이 나뭇잎 사이로 피어납니다. 내다보이는 지붕은 비둘기 몇 마리 날아와 내려앉아야 될 것 같습니다. 오후의 햇살은 마지막 빛을 발합니다. 빛이 있는 동안, 마음을 자라나게 두어야지요. 싸늘해진 시간 속에서도 사랑하기 위함입니다.
그때는 이차대전의 상흔이 아직 거리에 가득하던 때입니다. 안나는 입던 옷들이 깡똥해졌습니다. 발목이 나오고 손목이 훤히 보이게 되었죠. 다음 해에는 어떻게 하든지 겨울 외투를 마련해야만 할 것 같습니다. 집에는 돈이 없습니다. 엄마와 안나는 할아버지의 금시계를 가지고 양을 키우는 아저씨를 찾아가 양털을 달라고 합니다. 봄이 되어 양털을 깎을 때 오라고. 양들도 털옷으로 겨울을 따뜻하게 나야 하니까요. 봄에 찾아갔더니 양들이 옷을 벗어 주었습니다.
이렇게 시작된 그림책은 안나의 빨간 외투가 마련되기까지 사계절만큼이나 긴 시간이 걸립니다. 집에 있던 물건은 한 가지씩 나눠지게 됩니다. 양재하는 아저씨 가게에 걸린 빨간 외투의 선명한 빛깔이 눈에 선합니다. 외투를 받은 안나는 크리스마스에는 옷을 만들어준 분들을 초대하자고 합니다. 이 이야기는 사실에 바탕을 두었다고요.
그림동화가 갖는 매력은 단순하면서 사탕 같은 사랑을 흠뻑 담아내고 있다는 것입니다. 아이들과 읽었던 동화가 오히려 제 마음을 덥힐 때가 많았습니다. 나도 아이들과 같이 자라는 시간들이었을 겁니다. 아이들이 그림책에 물들어 가는 만큼 나도 물들었을 것입니다. 어떤 면에서는 서로 동기일 수도 있습니다.
가을빛이 남아있을 동안 겨울채비를 하라고 나뭇잎은 아직 버티고 있는 걸까요. 은행나무 둥치로 기어오르던 담쟁이는 풋풋합니다. 노랗게 팔랑거리는 것을 기대하고 왔는데 빛바랜 초록이어서 멈칫했습니다. 여긴 가을이 서서히 오는구나! 마음을 연한 이들과 차 한 잔의 여유를 맛보려고 미리 와보았습니다. 휠체어를 타는 친구가 있거든요. 은행나무 밑에 앉아 웃을 수 있겠습니다. 깊숙한 가을을 보기를 바랐지만 지난 계절을 떠나보내는 아쉬움도 운치 있겠습니다. 유칼립투스가 이파리만 떠 있는 것 같고 꽃방울 몇 더 빛납니다. 지난 시간의 흔적일까요.
포도나무 넝쿨 가지 사이 알전구가 불을 밝혔습니다. 해가 남아있어 불빛은 수줍습니다. 하늘이 옥빛입니다. 순한 하늘빛과 센 불빛은 어울리지 않는 것 같지만 조화롭습니다. 내 마음에도 등불이 켜집니다. 따스해지는 느낌이 좋습니다. 우리에겐 아직, 인디언식으로 사라지지 않는 달 십일월이 남아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