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친년 널뛰듯

by 민진

약속이 잡히면 한 시간은 먼저 가 있고 싶어 진다. 미리부터 마음이 설렌다. 계획된 일들을 차분하게 해야 할 것인데도 들썩이며 저만큼 앞선다. 카페에 혼자 있다가 사람들을 만나야 더 알찬 것 같다. 어제도 그랬다. 두시가 약속인데 무엇이 그리 급한지 서두른다. 언젠가 들었던 말 한마디가 매듭처럼 내 눈앞에 툭 던져진다. ‘미친년 널뛰듯 하지 마라’

어린 날 이웃에는 생각이 오락가락하는 분이 어머니와 살았다. 길가 집이라서 그랬는지 중년이 된 그 남자는 아무 때나, 사람이 있건 없건 우리 집 방에 와서 오도카니 앉아 있곤 했다. 혼자 뭔가를 중얼거리기도 하고, 말을 붙이면 대답이 맞을 때도 있고 틀릴 때도 있었다. 목소리는 힘을 다 빼버린 듯 가느다라 했다. 해코지 없는 순한 사람이었다. 날씨가 우울한 날은 정도가 심한 것 같기도. 한 참 있다가 이제 집에 가라고 하면 돌아가곤 했다.

어려서는 어머니로부터 결혼해서는 남편으로부터 지청구를 들었다. 절제가 몸에 배이게 되었다. 다른 사람과 견주어 잘못하는 줄 알고 나 자신을 책하고 괴로워도 했다. 그런 거 아닌데. 그들의 눈높이에 안 맞았을 뿐인데.


정서가 나랑 비슷한 친구가 있다. 사람은 끼리끼리 만나게 된다더니. 서로를 알아보고 끌어당기는 것인지 모른다. 할머니 할아버지의 손에서 자라서일까.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발산할 줄 안다. 누르는 것이 없다. 온전한 사랑을 받아서이겠지. 좋아 보인다. 전문직 일을 하면서 취미도 마음껏 누린다. 멍하니 바라본다. 나도 저런 면이 분명 있었는데. 기가 꺾인, 풀이 죽은 나를 내려다본다. 주눅 들게 했던 말이나 표정 손길들이 겁나게 싫기도 하지만 이제 와서 옛날로 돌이킬 수는 없다. 대리만족을 하면서 웃을 뿐. 나이와 상관이 없는 것이 분명하다. 사람 속에 잠겨있는 고유한 속성으로 인하여 다 다르게 드러날 뿐. 그것이 자라고 아니 자라고는 제재 없이 뭘 얼마나 시도해 보았는지가 중요한 것인지 모른다.


셋째는 고등학교에서 그림으로 통통 튀었다. 수시 입시제도 때문일 수도 있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는 것 같다. 정해진 휴학기간을 채우고서야 복학을 할 모양이다. 클래스 101이라는 인터넷 강좌를 시작하고, 개인 투자 금을 받아 창업도 한다. 우리 부부 어디에 저런 디엔에이가 있나 싶을 정도다. 딸에게 이야기를 하면, 우리 집은 긍정적인 방치가 도움이 되었던 것 같다고. 아이들이 여럿이다 보니 일일이 간섭을 받지 않은 사각지대가 있었다고 말하는 것이리라.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자랐다는 소리로 들린다. 나는 방치라는 말에는 기분이 안 좋다. 내버려 둘만큼 신경 안 썼다는 소리로 들려서.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하는데 저는 그렇게 느낀다고 하니 다행인가.

유원지 같은 데서 널뛰어볼 때 박자 감각과 순발력, 담력도 필요했다. 정신이 온전하지 못하는 사람이 할 수 있는 것 같지가 않다. 나대거나 설치는 것을 보아내지 못하는 말은 아니었을까. 왜 여자에게만 한정되어 있을까. 무엇에 누구를 위한. 경계를 넘지 못하도록 순응하는 것이 절대 선 인양 길들여지고 강요하기 위하여 만들어낸 속담은 아니었는지.

널을 뛰다가 날 것 그대로. 떨어져 보기도 하고, 틀려 보기도 해야 잘잘못을 느껴보고 차분해지기도 하고 모난 부분들이 다듬어지기도 할 텐데. 그 시간을 못 참아주고 윽박지르고 시도해 보기를 막아버리는 것은 아닌지. 설레발친다는 것이 부정적인 말로 들리긴 하지만 에너지가 넘친다는 언어로도 해석될 수 있다. 그 싹을 미리 잘라 내지 못하면 안 될 것처럼 주저앉히고 가라앉히고 정해진 울타리 안에서만 움직이라고 강요했을까.


제약을 받지 않고 시행착오를 많이 격고 자란 사람들이 다른 삶을 펼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들만이 창의력과 뛰어난 사고력으로 거칠 것 없는 자존감으로 충만하려나 막연한 동경심을 품어본다. 생명에 해가 되지 않고 남에게 피해가 되지 않는 것은 무엇이든 해보도록 두어야 하지 않을까. 자빠지고 깨어지더라도 어릴 때는 행동반경이 좁으니 상처야 나겠지만 작은 딱지로 충분할 듯. 회복탄력성이 좋을 때에 뭔가를 시도해야 뭘 잘하는지, 좋아하는지 아는 것 아닐까.

나이 들어 뭔가를 시작하니 힘이 들긴 하다. 멈출 수야 없지 않은가. 계속 가라고 등 떼민다. 오늘따라 백로가 강에 많이 나와 있다. 고니도 벌써 먼 나라에서 날아왔다. 천천히 강을 건너서 찻집으로 향하는데 건너편 산이 하늘이 가을이 몰켜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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