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주이야기

by 민진

순간을 잡는다. 두서너 줄 가파르게 마음에 매달린다. 표정들이 살아 넘실거린다. 가슴이 베인 듯 아리기도 하다. 환경과 사람, 생활이 우물 속 하늘 인양 비쳐 든다. 마알간 숨 한 가닥 내 안에 넣어준다. 친구의 시 안에서는 왜가리도 고양이도 어린아이도 주인공이다. 하늘도 강도.


친구에게 브런치를 소개했다. 아직 공간만 세내고 있다. 하루빨리 독자가 되고 싶다고 다그친다. 고이 간직한 시들을 보라 한다. 내가 시에 대해서 뭘 아느냐고. 그래도 읽으라고 재촉한다. 시 공부야 평생교육원에 한 학기 수강한 것 밖에 없는 나에겐 무리다. 단지 일 년여 글쓰기를 했으니 그것으로 부탁한 것일까.

읽는다. 향기를 맛본다.


이해할 수 없는, 피라미드 꼭대기에 갇혀 있는 현대시보다 어렵지 않아 반갑다. 마음에 와 닿는다. 감동이 뭉클거린다.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아프게 지어진 글이다. 몇 줄 되지 않지만 먹먹해지는 명치 언저리. 한숨같이 녹여내는 한 줄 한 줄.


아는 것 없지만 겹쳐지는 말과 설명된 부분만 걷어내라고 해 본다. 나에게 기대어 온 그 마음이 내 마음이라 미안해하지 않기로 한다. 파란 물 한 바가지 떠 마신 듯하다. 그것이 시가 될 수 있는지! 궁금해한다. 마음이 얹히면, 감동이 있으면, 삶의 한 복판의 울림이 시 아닐까.

문예지에 올라온 시 몇 줄이나 이해가 되던가. 꼬고 꼬아서 몇 사람이나 알아본다고. 가끔 외계어 같은 느낌도 떨칠 수가 없다. 줄 세우기 위한 무엇일까. 어렵게만 끌고 가려고 하는지. 내 밴댕이 소갈머리로는 도저히 납득이 안 되는 부분이다. 어쩔 수가 없다. 뭘 모르는 사람이 보고 이야기한 것이 맞는 모양새일 수도 있다는 것에 살짝 기대어본다. 친구가 보여준 시가 무엇을 닮았는데. 입속에 무슨 말인가가 맴도는데 겉돌기만 하고 생각이 나지를 않는다.


카페 이름이 에이 투 원이다. 경치가 좋다고 젊은이들 사이에 인기다. 이름을 정한 이유가 궁금했는데 친구가 알아온다. 딸 생일이 팔월 일일이어서 만들어진 제목이라고. 종이컵 겉표지 디자인도 딸이 했다고. 세련된 것 같다. 혹 그래서 머그잔에 커피를 주지 않고 계속 종이컵을 사용하는 것은 아니겠지. 의심을 해본다. 다른 곳에 갈 때마다 머그잔에 커피를 주던데 이곳은 올 때마다 종이컵이다. 왜 종이컵에 주느냐고 따졌다. 코로나 뒤로 숨어 편리함만을 가져가는 것은 아닐까. 딸의 생일로 딸이 새긴 마크로 가게를 연다는 것이 멋지다. 몇 사람이나 가능한 일일까. 벽에 걸려있는 그림들도 딸이 그렸을 거라고 미루어 짐작한다.

친구를 만나고도 이틀을 지나서야 맴맴 거리던 것이 무엇이었는지 생각이 났다. 그것도 잠결에. 마주이야기. 디카시.

몽글몽글한 어린것들이 세상을 새로이 알아가는 눈으로 본다. 보여 온 것들을 신기해하며 고 귀여운 입으로 뱉어낸 말 숭어리들이 꽃잎 같기도 했다. 아이들 말을 적어나갔다. 너무 재미있어서 읽어주고. 그렇게 몇 년이 지난 뒤에 그 공책을 찾아도 보이지 않아서 얼마나 서운하던지. 칠칠찮아서.


우리는 마주이야기로 살아간다. 이어진다. 바라보며 이야기하든지. 거닐면서든지. 마음을 나누는 것이다. 친구 시 속에 나와 있는 발달장애 아동들과의 맑은 말도. 웃음도. 카페 이름을 딸 생일로 하는 것도 그 선에 있다. 내가 너를 사랑한다는 말로 바뀌어 들려온다.

오랜 세월 티격태격 살아온 부부는 어떨까. 마음속으로의 여행은 아닐까. 반백년 이상을 살아온 세월이 녹아들어, 눈빛 말을 할 수도 있겠다. 표정 하나로도 읽힐까. 마주이야기는 유아들과만 주고받는 것이 아니다. 누구일지라도 말 맞춤이 잘 될 때에 살맛이 나는 것은 아닐까. 조건이 있다. 잘 들을 때에만 가능해진다. 이제 막 시작한 아기 말을 엄마는 얼마나 귀 기울여 들을까. 첫 마음이 변치 않는다면 말들은 시가 되어 피어 날 것 같다.


* 위 사진은 카페 에이투원의 로고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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